[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동계종목이 없는 아프리카도 동계올림픽에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이하 강원2024) 봅슬레이 경기장에서 2018년 평창올림픽의 레거시가 반짝반짝 빛났다. 튀니지의 17세 소년 조나단 루리미는 23일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열린 강원2024 남자 봅슬레이 1인승 경기에 나섰다. 루리미는 2022년 '2018평창기념재단' 동계 스포츠 저변 확대 프로그램 '뉴호라이즌'을 통해 난생 처음 동계스포츠 종목을 접했고, 지난해 개발도상국 육성사업을 통해 봅슬레이 전문선수로 거듭났다. 꿈꾸던 강원2024에 소피 고르발(15), 베야 모크라니(15)와 함께 튀니지 역사상 최초로 동계올림픽 무대를 밟은 루리미는 그저 '출전'에 만족하지 않았다.
23일 봅슬레이 1인승 경기에서 혼신의 질주로 1·2차 합계 1분49초96를 찍으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대한민국 썰매천재' 소재환에 이어 루리미가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뜨거운 환호성이 쏟아졌다. 튀니지 역사상 최초의 동계 스포츠 메달. 튀니지 선수단이 루리미를 헹가래 치며 기쁨을 표했다.
6년 전 '아이언맨' 윤성빈의 사상 첫 스켈레톤 금메달 성지에서 아프리카 소년이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24일 강원2024조직위 기자회견에 나선 루리미는 "2년 전 '뉴호라이즌 아카데미'를 처음 시작할 땐 이런 일이 가능할 줄 몰랐다"며 감격을 전했다. "2022년 여름 한국에 와서 다양한 동계 스포츠를 체험했는데 그중 봅슬레이와 사랑에 빠졌다"고 털어놨다. "120㎞의 속도감이 좋았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무섭긴 했지만 결승선을 통과할 때의 짜릿함과 성취감이 컸다"며 봅슬레이의 매력을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이 자리에 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고개 숙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선수로, 사람으로 성장했다. 전세계 많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많은 걸 배웠다. 이 놀라운 프로그램을 통해 위대한 선수들도 만났고, 이렇게 강원2024 은메달을 따게 됐다"고 돌아봤다.
첫 메달 역사에 튀니지는 난리가 났다. 루리미는 "함께 온 부모님이 안아주셨다. 다들 '역사'라고 하셨다. 튀니지 가족, 친구들로부터 연락도 많이 왔다. 그들을 자랑스럽게 해줄 수 있어서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튀니지 친구들을 향한 메시지도 전했다. "튀니지는 물론 아프리카 친구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계속 도전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청소년올림픽, 올림픽 챔피언, 메달리스트가 될 수 있어. 너희도 나처럼 할 수 있어." 다음 목표를 묻는 질문에 루리미는 "열심히 해서 2026년, 2030년 진짜 동계올림픽에 나가고 싶다"고 답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노력하면 원하는 걸 이뤄낼 수 있다는 걸, 겨울스포츠가 없는 튀니지, 아프리카에서도 동계종목 메달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원2024 대회엔 2018평창기념재단의 '뉴호라이즌' 사업을 거쳐 선발된 9개국(태국, 대만, 몽골, 싱가폴, 브라질, 콜롬비아, 자메이카, 케냐, 튀니지) 25명 선수가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쇼트트랙, 알파인스키, 크로스컨트리 등 6개 종목에 참가했다. '평창 스켈레톤 경기위원장' 출신 김아람 2018평창기념재단 인재양성팀장은 "2022년 여름 아프리카, 동남아, 남미 등 100여명 학생을 강원도에 데려와 2주간 동계종목 7개를 다 시켜본 후 데이터를 분석해 성적을 보고 루리미에게 봅슬레이를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국가대표 감독님과 전문가들이 과학적, 체계적으로 운영했다. 두 번째 왔을 때는 2주간 자신에게 맞는 한 종목만 했고, 지난해 여름에도 전지훈련을 했다. 100명 중 강원2024 출전이 가능한 32명을 선정해 세계 대회에 출전하면서 포인트를 쌓아 이번 대회에 나오게 됐다"고 튀니지 동계 스포츠의 새 역사를 쓴 '뉴 호라이즌'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마침 이날 '눈 없는 나라들'와 '함께 할 때 빛나는' 역사를 써내린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의 사후 활용 계획이 발표됐다. 강원도와 평창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KBSF), 2018평창기념재단이 올림픽 슬라이딩센터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했다. 평창 올림픽 테마파크 내 IBSF 아시아 지사 및 아카데미 설립, 월드컵, 아시아컵 시리즈 등 지속 가능한 국제대회를 평창과 중국 옌칭에서 순환 개최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통해 한해 450명 이상이 평창을 찾으면 연간 10억원 이상의 경제 활성화 효과, 국제대회 경기장 대관료 수입으로 연간 2억원을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아람 2018평창기념재단 팀장은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과 연계해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면서 "지난해 스펀지 썰매를 도입해 1년에 500명이 체험했다. 뉴욕에선 스펀지 썰매 수익이 1억원이 넘는다. 아카데미 사업은 물론 기업들의 팀빌딩 프로그램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표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