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골든보이' 이강인(23·파리생제르맹)이 막히자, 클린스만호도 길을 잃었다.
요르단전은 이강인에 의존하던 클린스만호의 약점이 여실히 드러난 경기였다. 한국은 이날 66%의 볼점유율을 유지하며 23번의 슈팅을 날렸다. 하지만 내용이 좋지 않았다. 이날 한국이 만든 빅찬스는 단 2번 뿐이었다. 6번의 빅찬스를 만들었던 바레인전과 비교해 확 줄어들었다. 숏패스 구사가 줄어든 대신, 롱볼이 늘어났다. 당연히 패스 성공률이 떨어졌다. 가운데서 빌드업이 잘 안되다보니 측면에서도 경기가 풀리지 않았다. 바레인전에서 무려 23번의 크로스 시도가 나왔던 것과 달리, 요르단전에서는 15번의 크로스 밖에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드리블 수치의 변화였다. 최근 가공할 공격축구를 펼치던 클린스만호의 핵심은 바로 드리블이었다. 전술적 움직임을 강조하던 전임 벤투호와 달리, 클린스만호는 개인 능력이 좋은 선수들의 개인 기량을 최대한 살려주는 '자유 축구'를 펼친다. 선수들의 1대1을 바탕으로 경기를 펼치는만큼, 드리블 빈도도 올라갔고, 그에 비례해 성공률도 올라갔다. 6대0 대승을 거둔 지난 9월 베트남전 드리블 성공률은 무려 80%에 달했다.
완승을 거뒀던 바레인전에서도 이같은 기조가 이어졌다. 한국은 30번의 드리블을 시도해 17번을 성공시켰다. 성공률은 57%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 요르단전에서는 시도도 22번으로 줄었고, 성공도 6번 밖에 되지 않았다. 성공률도 27%로 뚝 떨어졌다. 바레인전과 달리 상대를 1대1에서 제압하지 못하다보니, 그만큼 어려운 경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클린스만호는 큰 틀에서 정해진 움직임에 맞춰 플레이하기 보다는 국지전에서 상대를 무너뜨린 후 이어진 찬스에서 득점을 만드는 형태다 보니, 그 출발점인 드리블 성공률의 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래서 클린스만호의 핵심은 이강인이다. 이강인은 특유의 탈압박 능력과 화려한 발재간을 앞세운 전진 능력으로 클린스만호의 공격을 풀어갔다. 이는 손흥민도 할 수 없는 능력이다. 클린스만호는 이강인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기 시작하면서부터 공격이 폭발했고, 이는 지난 바레인전까지 이어졌다. 이강인은 이날 두 골 뿐만 아니라, 무려 8번의 드리블을 성공시키며 클린스만호 첨병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강인은 조별리그 1차전 최다 드리블 성공으로 아시아축구연맹으로부터 '못말리는 이강인'이라는 기분 좋은 별명까지 얻었다. 키패스도 3개나 성공했다.
하지만 요르단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이강인은 1차전의 절반도 되지 않은 3번의 드리블 밖에 성공시키지 못했다. 75%의 성공률은 37.5%로 수직 낙하했다. 드리블이 되지 않다보니 키패스도 1개로 줄었다. 이강인이 안풀리니 클린스만호의 공격도 예리함을 잃었다. 물론 이날 이강인의 몸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발목이 좋지 않아 전체적인 플레이가 1차전에 비해 무겁고 둔탁했다.
하지만 상대 대응도 분명 눈여겨 봐야 한다. 요르단은 이날 이강인을 대인방어로 묶었다. 왼쪽 미드필더 알 마르디가 1차 방어에 나섰고, 뚫리면 주변에서 빠르게 커버했다. 요르단의 전략은 완벽히 통했다. 오른쪽에서 돌파를 통해 중앙으로 이동해 공간을 만들고, 거기서부터 날카로운 패스를 찌르는 이강인 특유의 공격 형태를 저지했고, 그러자 한국의 공격력도 반감됐다. 손흥민이 왼쪽을 중심으로 고군분투했지만, 전체적으로 아쉬운 경기였다.
'해줘 축구'의 폐혜가 그대로 나왔다. 이강인이 막히면 주변에서 도와주면서, 흐름을 바꿔야 하는데, 준비된 부분 전술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강인에게 볼을 주고 지켜볼 뿐이었다. 바레인전에서 이강인의 위력을 지켜본 상대는 기를 쓰고 막으려 할 것이다. 요르단이 보여준 파훼법을 들고 나올 공산이 크다. 앞으로 상대는 지금보다 강하다. 지금처럼 이강인에게 맡기기만 한다면, 더 답답한 경기 양상이 될 것이다. 이강인이 더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감독'의 몫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