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패럴림픽 마스코트 '반다비'에서 착안한 반다비체육센터는 장애인 체육인들의 숙원이 담긴, 평창의 레거시다. 장애인 누구나 집 근처에서 언제든 자유롭게 체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장애인이 우선 이용하되 비장애인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통합 체육시설이다. 지난해 8월 18일 '1호점' 광주북구반다비센터 개관식에 참석한 앤드류 파슨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위원장은 "반다비체육센터는 평생 본 최고의 패럴림픽 레거시다. 스포츠를 통해 통합사회를 구현하는 좋은 선례"라고 극찬했다. 파슨스 위원장은 지난달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에게 또 한번 '반다비'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다는 후문. 평창패럴림픽 그후 5년, '1호점' 광주북구 반다비센터를 시작으로 지난 21일 진주반다비센터까지 총 8개소가 개관했다. 2027년까지 150개소 건립 목표로 현재 93개소(체육관형 58개, 수영장형 28개, 컬링, 빙상 등 종목특화형 7개)의 건립이 확정됐다. '반다비' 개관 1주년을 넘긴 11월, 모범적 운영으로 소문난 '2호점' 경남 양산 반다비체육센터를 직접 찾았다.
▶"우리 동네 반다비체육센터, 로또 당첨된 기분"
경남 지역 최초로 지난해 10월 1일 개관한 양산 반다비체육센터는 하루 평균 167명, 올해 10월까지 총 4만5598명의 장애, 비장애 시민들이 찾은 '운동 맛집'이다. 사업비 106억원(국·도비 47억원, 시비 59억원)으로 지어진 작고 나직한 센터는 수영장과 체육관으로 구성됐다. 수영장은 휠체어 진입로가 있는 25m 성인풀 6레인, 25m 수중재활풀 2레인, 15m 유아풀 2레인으로 오후 2시부터 5시40분까지는 장애인 전용 강습, 나머지 시간은 장애-비장애인 어울림 강습이 진행된다. 주2회 기준 수영 강습비는 성인 2만6400원, 청소년 2만2000원, 어린이 1만7600원. 장애인에겐 50%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수영장 옆 소규모체육관에선 일주일 내내 배드민턴, 좌식배구, 슐런, 요가댄스로빅 등 양산시장애인체육회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이날 오후 4시 시작된 초등생 상급반 수업, '초4 리온엄마' 윤민정씨(43)는 "어떻게 이 수업료에 이런 고퀄리티 수업을 받을 수 있는지… 완전 로또"라며 최상의 만족감을 전했다. "개인,그룹수업 다 해봤는데 발달장애 아이라 잘 늘지 않았다. 30분 5만원의 수업료도 부담이 됐다. 아이들이 말을 잘 못 알아듣다보니 '강압적으로 하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비장애 아이들에게 안하는 강압적 방식을 왜 우리 아이들에게 쓰느냐고 항의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선 실력이 정말 빠르게 늘었다. 6명의 아이를 강사 2분이 정성을 다해 가르치신다. 발차기를 겨우 하던 아이가 이제 접영을 한다. 우리 애도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면 선생님들이 오히려 '왜 못한다고 생각하느냐. 할 수 있다'고 답해주신다. 다녀본 수영장 중 단연 1등이다.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 정말 감동 그 자체"라고 했다.
'경남 장애인수영 레전드' 천영조씨(54)는 이곳에서 장애학생들의 수영을 가르친다. 작년 울산전국체전 3관왕, 올해 전남전국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건 천씨는 "양산에서 장애인 수영선수가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이 수영장서 장애학생체전, 패럴림픽에 나갈 아이들이 나오는 게 내 꿈"이라고 했다. "다른 수영장서도 강습을 했었는데 레인 배정이 힘들었다. 여기선 장애인 레인을 우선 배정해준다. 월요일 2시간, 토요일 3시간 등 시간 할애도 많이 받고 있다. 15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밝아지고 건강해지는 게 눈으로 보인다"며 흐뭇해 했다.
오후 7시 저녁 수영은 장애-비장애인 어울림 수업으로 진행됐다. 2009년 뇌출혈로 편마비가 생긴 후 꾸준히 재활운동을 해왔다는 조정애씨(59)는 "딸의 권유로 오게 됐다. 병원 재활센터, 한의원을 10년 넘게 다녀봤지만 여기서 맘 편히 수영하는 게 정말 좋다"고 호평했다. "선생님도 좋으시고 직원들도 친절하다. 장애인끼리 따로 하는 수영장도 있는데 여긴 함께다. 수영도 함께 늘고, 같이 어울린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씨 옆 레인, '95년생 직장인' 박혜영씨는 9월부터 석 달째 이곳에서 수영을 배우고 있다. "회사가 가까워서 선택했다. 장애, 비장애? 그런 건 애초에 생각도 안했고 그냥 수영 배우러 왔다"고 했다. "어차피 다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인데 수영도 한 공간에서 이렇게 통합해서 함께 배우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며 웃었다.
▶반다비체육센터의 힘은 '사람'과 '소통'
양산 반다비의 힘은 '사람'이다. 모두의 스포츠에 진심인 김학태 양산시시설관리공단 반다비체육센터팀장과 박우현 양산시장애인체육회 사무국장이 의기투합했다. 양산시시설관리공단이 시설을 위탁 운영하고 양산시장애인체육회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구조다. 100억원 남짓한 작은 체육관의 빈틈을 메우는 건 결국 '사람'이고 '정성'이다. 센터 내 사무실을 오가며 수시로 의견을 나눈다.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며 최상의 결론을 도출한다. 시의회에 함께 달려가 예산을 확보하고, 지역 공동체와의 협업을 위해 함께 발로 뛴다. 김 팀장은 "손가락도 잘 못펴던 분들이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이 시설들이 더 빨리 생겼으면 훨씬 더 좋아졌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라고 했다. 박 국장은 "장애인 우선등록 후 대부분 강좌가 1분만에 마감된다. 체육회, 반다비 업무를 내것 네것 아닌 '우리것'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일하다보니 시너지가 난다. 양산 반다비만의 독창적인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웃었다. 김상호 경남장애인체육회 체육진흥부장은 "1년 전 개관 때 지적한 내용들이 다 개선돼 있어서 놀랐다. 경남엔 이미 개관한 양산, 고성, 진주를 포함 총 7개의 반다비센터를 추진중인데 양산시의 협업 모델은 아주 모범적인 사례"라고 칭찬했다.
이들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다. 건물 옥상에 장애-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루프탑 풋살장'을 조성중이다. 평일엔 장애, 비장애학생, 여성교실을 운영하고 주말엔 청소년들에게 대관도 한다. 수익모델로도 연결지을 계획. 지난 3월부턴 체육관 뒤 디자인공원 '반딧불이 숲'을 활용, 장애, 비장애, 유아, 초등생 80명을 대상으로 심신치유 프로그램도 운영, 큰 호응을 얻었다. 지역 미용실과 연계, '반딧불이 미용실'을 예약제로 운영하고, 부산대 의대 재활의학과와의 협업도 추진중이다. 이용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개선을 위해 계속 노력중이다. 내년엔 대한장애인체육회에 공모, 휠체어 이동용 특장버스도 받게 됐다. 김 팀장은 "반다비체육센터가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었다. 주차장을 정문에 설치했는데 우천시 비를 맞거나 경사로 이동거리가 길다는 의견이 나왔다. 내년엔 경사로 없이 바로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 쪽으로 주차장을 옮기고 이용자들이 비 한방울 맞지 않게 가림막도 만들 것"이라고 했다. "반다비체육센터가 속속 개관하는 만큼 서로의 노하우를 나누고, 설계 초반부터 장애 당사자와 장애인체육 전문가들이 참여해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면 좋겠다"는 의견도 냈다.
장애인 생활체육 활성화의 거점이 될 반다비체육센터 건립 사업은 '약자 프렌들리'를 지향하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다. 이정미 문체부 체육협력관은 "전국의 반다비체육센터를 장애인체육의 거점으로 삼아 맞춤형 운동 처방을 제공하고 장애인스포츠강좌를 이용하거나 다양한 장애인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장애인들이 체육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원스톱 서비스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라면서 "정부는 사회통합형 체육시설인 반다비 체육센터를 통해 누구나 공정하고 차별없이 누릴 수 있는 체육정책을 펼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양산(경남)=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