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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전패' 변성환호가 한국축구에 남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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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의 벽은 더욱 높았다.

변성환 감독이 이끄는 U-17 대표팀은 18일 인도네시아 반둥 잘락 하루팟 경기장에서 벌어진 부르키나파소와 2023년 U-17 월드컵 조별리그 E조 3차전서 1대2로 패했다. 이날까지 패한 한국은 조별리그 전패 최하위로 U-17 월드컵을 마무리했다. 한국이 이 대회에서 조별리그 탈락한 것은 2007년 대회 이후 16년 만이다. 조별리그에서 전패를 당해 승점 1점도 따내지 못하고 대회를 마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프랑스, 미국, 부르키나파소라는 만만치 않은 조에 속했지만, 아쉬운 결과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 나선 아시아 5개국 중에서 가장 나쁜 성적을 기록했다. 일본과 우즈베스키스탄, 이란이 나란히 각 조 3위를 기록한 뒤 16강 토너먼트 티켓을 거머쥐었다. 개최국 인도네시아도 비록 탈락했으나 승점 2점(2무1패)나 따냈다. 1987년, 2009년, 2019년 대회에서 기록한 8강이 역대 최고 성적인 한국축구는 이번 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목표로 잡았지만, 끝내 고개를 숙였다.

변성환호의 이번 대회 콘셉트는 '공격 앞으로'였다. 예선전이었던 지난 아시안컵에서도 아기자기한 공격축구로 호평을 받았던 변성환호는 이번 대회에서도 과감한 공격축구를 전면에 내세웠다. 변 감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콘셉트대로 공격적인 경기를 펼칠 생각"이라고 했다.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빠른 패스워크는 날카로웠다. 남미팀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매력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미국전은 물론, '최강' 프랑스를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으며, 거세게 몰아붙였다. 프랑스 감독이 한국을 향해 "정말 좋은 팀"이라고 엄지를 치켜올릴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수비였다. 한국축구는 그간 수비에 초점을 맞춘, '선수비 후역습' 전략으로 세계 대회에서 힘을 발휘했다. 최근 4강에 오른 U-20 월드컵도 마찬가지였다. 변 감독은 공격적인 축구로 세계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공격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수비가 헐거웠다. 상대를 강하게 밀어붙이고도, 역습 한방에 무너지기 일쑤였다. 물론 미국전(1대3 패)과 프랑스전(0대1 패)에서 무려 세 차례나 골대를 맞출 정도로 운이 따르지 않았지만, 밸런스가 무너지며 상대에게 빌미를 내줬다.

한국축구가 연령별 세계 대회에서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한 것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15년만이다. 성인 대회 포함한 모든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전패를 당한 것은 벨기에, 스페인, 우루과이에게 모두 진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이후 최초다. 한국축구는 최근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U-20 월드컵에서는 두 대회 연속 4강 이상 진출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머쥐었다. 강한 압박과 빠른 역습을 무기로 한 한국축구는 경쟁력을 보였다.

변성환호는 업그레이드를 꿈꿨다. "물러서지 않고 맞불을 놓으며 세계에 맞서겠다"고 과감한 도전장을 던졌다. 결과는 실패였다. 한국식 공격축구는 이번 대회에서 한계를 노출했다. 체계적 육성 시스템을 바탕으로 성장한 선수들의 가능성은 분명했지만, 아직 세계를 상대로 공격적인 축구로 도전하기에는, 전술적으로나, 피지컬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여러모로 부족했던게 사실이다. 변 감독은 "결과만 생각했다면 짧은 패스로 만들어가는 방식의 공격 축구를 시도하지 않고, '선수비 후역습'을 택했을 것"이라며 "물론 좋은 축구를 하면서 결과까지 따랐다면 선수들의 성장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번 실패는 감독인 나의 실패다. 우리 선수들은 충분히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언제까지 선수비 후역습만으로 세계 무대와 싸울 수는 없다. 그렇기에 변 감독의 도전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길을 걷기 위해 한국축구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상과 현실에서 길을 잃은 변성환호가 한국축구에 남긴 숙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