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너무 죄송하고,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4⅔이닝 역투와 팀의 3연패 탈출, 스스로 만족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밤이었지만 KT 위즈 이선우(23)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이선우는 4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 선발 등판해 4⅔이닝 7안타(1홈런) 1볼넷(1사구) 2탈삼진 2실점했다. 팀이 3-2로 앞서던 5회초 1사 1, 2루에서 마운드를 내려갔다. 구원 등판한 이상동이 동점 허용 없이 아웃카운트를 채웠고, KT는 리드를 그대로 이어가면서 3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아웃카운트 1개를 채우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울 법했던 이선우였다.
하지만 경기 후 이선우의 마음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5회초 1사후 자신의 공에 왼쪽 손등을 맞은 KIA 박찬호(28)의 소식을 접했기 때문. 사구 후 1루를 밟은 뒤 교체돼 병원으로 이동한 박찬호는 엑스레이 검진 결과 왼쪽 척골 분쇄골절 판정을 받았다. 5일 서울에서 2차 검진을 앞두고 있으나, 검진 결과대로 소견이 나온다면 이대로 정규시즌 일정을 마감할 처지에 놓였다.
이선우는 경기 후 구단 관계자를 통해 KIA 더그아웃을 찾아 박찬호를 직접 만나 사과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더블헤더 2차전 패배와 박찬호의 부상 소식 속에 침체된 KIA 선수단을 찾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사구 후 한참 동안 모자를 벗은 채 박찬호를 바라보다 목례를 건넸던 이선우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많이 아파하시는 것 같아서 많이 당황스러웠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며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죄송하고 마음이 좋지 않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선우는 "일단 팀이 이겨서 만족스러운 경기였다. 매 경기 배운다는 생각으로 던지고 있는데, 내용과 결과가 좋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팀이 1차전에서 패해 많이 긴장했지만, 최대한 빨리 타자랑 상대하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간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복기했다. 그러면서 "사구 뒤 볼넷 등 위기 상황이 이어지면서 마운드를 내려오게 됐는데, 앞으로 사4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 했다.
유신고 출신인 이선우는 고교 시절까지 이웅진이라는 이름을 달고 뛰었다. 고3 때 이선우로 개명한 뒤 2019 KBO 신인드래프트 2차 7라운드로 KT 지명을 받았다. 이선우는 "'착하고 크게 크라'는 뜻으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 고3 봉황대기 때부터 바뀐 이름을 달고 뛰었다"며 "(이름을 바꾼 뒤) 야구적으론 잘 풀리는 것 같다"고 밝혔다.
올 시즌 전까지 1군 6경기 등판이 전부였던 이선우는 선발-불펜을 오가면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선우는 "작년에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1군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렇게 많은 기회를 얻게 될 줄은 몰랐다. 모든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라며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 한다는 생각으로 던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수원=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