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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녀'현정화도 울린 신유빈X전지희金,오성홍기 없는 탁구 시상식은 처음이지?[항저우S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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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중국 오성홍기도, '짜요' 함성도 없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탁구 마지막날인 2일 밤, 신유빈-전지희조의 여자복식 금메달 시상식이 열린 중국 항저우 궁수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선 국제탁구 메이저대회 사상 좀처럼 보기 드문 진기한 장면이 펼쳐졌다. 난공불락 '1강' 중국이 사라졌다. 중국 없는 아시안게임 복식 4강은 1966년 방콕 대회 이후 57년 만의 일이다.

이날 시상식은 생경했다. '금메달' 태극기가 가장 높은 곳에서 휘날렸고, '은메달' 북한 인공기, '동메달' 일본 일장기과 인도 국기가 나란히 내걸렸다. 중국 국기가 사라진 탁구 시상식은 이번 대회는 물론 이전에도 없었던 풍경. 중국이 4강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건 실로 보기 드문 일이다. 그것도 중국 안방인 항저우에서 열린 대회에서 말이다.

불과 한달 전인 8월 평창서 열린 아시아탁구선수권에서 중국은 남녀 단체전, 남녀 단식, 남녀 복식, 혼합복식 등 총 7개 종목의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여자복식서도 전지희-신유빈조는 쑨잉샤-왕이디조와의 4강에서 패하며 동메달을 기록했고, 중국끼리 결승전이 성사됐었다. 더반세계선수권 4강에서 전지희-신유빈조에 일격을 당한 '중국 최강' 쑨잉샤가 왕만유에서 왕이디로 파트너를 바꿨다. 한국 안방인 평창에서 중국 소녀팬들의 "짜요!" 함성이 연일 경기장에 물결쳤었다.이번 대회 중국은 남녀 단체전, 남녀 단식, 혼합복식 남자복식 금메달을 휩쓸었다. 신유빈-전지희의 여자복식은 중국이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땅이다. 4강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건 그야말로 '충격'이자 '굴욕'이다.

21년 만의 쾌거, 신유빈-전지희의 금메달 가도엔 '천운'도 뒤따랐다. 인도 수티르타 무케르지-아이히카 무케르지가 중국 첸멍-왕이디조를 밀어냈고, 일본 하리모토 미와-기하라 미유조가 또 하나의 중국조 쑨잉샤-왕만유조를 밀어냈다. 두호이켐이 맹활약한 홍콩 에이스조는 북한에 밀려 탈락했다. 한국 전지희-신유빈조는 일본 하리모토-기하라를 이기고 결승에 올랐고, 북한 차수영-박수경조는 까다로운 인도조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2000년대생 오른손잡이 조합으로 5년 만에 국제무대에 나선 북한은 '세계 1위' 전지희-신유빈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신유빈-전지희조에게 남북전 부담 같은 건 없었다. 19세 막내 에이스 신유빈은 "상대가 누구든 똑같이 경기를 준비했다. 지희 언니과 이전과 똑같이 하던 대로 준비했고, 세리머니도 즐겁게 다른 생각 없이 잘했다"며 웃었다. 이겨야 사는 남북전에서 과거 선배들이 가졌던 긴장감, 지면 끝장이라는 부담감 없이 평소와 똑같이 '해맑은' 표정으로 오직 경기에만 집중했다. 반면 난생 처음 메이저 국제무대에 나선 북한의 어린 복식조는 남북의 결승전에서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박자가 맞지 않았다. 기술 차이가 또렷했다. 시상식에서도 경직된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만리장성 철벽에 막힐 때마다 탁구인들은 말해왔다. "언젠가 반드시 한번은 기회가 온다. 그 천금의 기회가 왔을 때 준비돼 있어야 한다. 그래야 중국을 넘어 금메달을 딸 수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여자복식 석은미, 이은실, 남자복식 이철승-유승민의 금메달 이후 21년간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던 그 기회가 마침내 제발로 찾아왔다. 그리고 그 천운, 그 천금같은 기회를, '준비된 복식조' 전지희-신유빈은 놓치지 않았다.

'철녀' 현정화 SBS 탁구해설위원(한국마사회 탁구단 총감독)은 이날 신유빈-전지희의 여자복식 금메달 중계중 눈물을 쏟았다. 1990년 베이징 대회에서 홍차옥과 함께 사상 첫 여자복식 금메달을 따냈던 레전드 현 감독은 "결승전치고는 치열했던 승부가 아니었고 1-2게임을 보고 이기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금메달을 예상했지만 극적인 경기가 아니어서 전혀 눈물이 날 것같진 않았다. 그런데 선수들이 금메달을 확정 짓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속에서 뭔가 왈칵 올라오더라"고 했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린 금메달을 보니 울컥하고 뭉클했다. 옛날 생각도 나고, 지난 20년간 한국 여자탁구가 힘들었던 순간들, 서러웠던 순간들이 오버랩되면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중국조가 조기 탈락하면서 좋은 기회가 생긴 것 맞지만 그 기회를 잡아낸 건 결국 실력이다. 일본과의 준결승전, 북한과의 결승전에서 실력을 보여줬다"며 금메달 후배들을 향한 찬사를 전했다.

올해는 여자탁구의 기념비적인 해다. 1973년 사라예보세계선수권에서 '레전드' 이에리사, 정현숙 등 대선배들이 구기종목 첫 금메달을 획득한 지 50주년 되는 해이자, 1993년 예테보리세계선수권에서 '탁구여제' 현정화가 여자단식 첫 금메달을 목에 건지 30주년 되는 해에 신유빈-전지희조가 여자탁구의 금맥을 다시 이어가기 시작했다. 현정화 감독은 "나로 인해 한국 여자탁구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서 후배들이 지나친 부담감을 갖게 되는 건 아닌지 늘 마음이 쓰였다. 동메달, 은메달도 정말 잘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설 내내 많이 했다. 실제로 그렇다. 그런데도 막상 간절했던 금메달을 따니 너무 좋더라. 수영, 펜싱에서 금메달을 따는 걸 보며 우리 탁구도 땄으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해설 마지막날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게 됐다. 후배들 덕분에 내가 축하를 많이 받았다"며 미소 지었다. "(신)유빈이도 너무 잘해줬고, (전)지희도 한국에 온 후 오랜 세월 정말 열심히 잘 버텨줬다.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이라면서 "이제 시작이다. 더 자신있게 내년 부산세계선수권, 파리올림픽에서 여자탁구의 더 빛나는 순간을 계속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선배의 바람을 전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