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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리더'최윤 단장"팀코리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진심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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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달 24일 충북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미디어데이', 최윤 선수단장(60·OK금융그룹 회장)은 촌내에 설치된 선수단 응원 패널에 이렇게 썼다. 재일교포 3세, 대한럭비협회장이자 남자배구 OK금융그룹과 '읏맨' 럭비단 구단주, 자타공인 스포츠에 진심인 그가 전쟁같은 승부 앞에서 '행복'을 기원했다. 저마다 '파부침주' '수사불패'를 외치는 전장에서 팀 코리아 수장의 짧은 한줄엔 울림이 있었다. 20일 대한민국 선수단 본진 출국을 하루 앞두고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내 OK금융그룹 본사에서 만난 최 단장에게 이 메시지의 의미를 물었다.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1994년 히로시마대회를 빼고는 2014년 인천대회까지 28년간 중국에 이은 종합 2위였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대회서 금메달 49개로, 75개의 금을 딴 일본에 2위 자리를 뺏겼다. 그후 5년, 항저우에서 대한민국의 목표는 '금 50개, 종합 3위', 현실적 목표는 일본과의 격차 줄이기다.

최 단장은 한국 엘리트 체육의 난세에 선수단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2위를 일본에 내주고, 3위 수성이 목표라는 대회, 어찌 보면 욕 먹을 자리를 기꺼이 수락한 이유는 분명했다. 최 단장의 꿈은 메달과 순위 그 너머에 있다. "이번 항저우아시안게임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스포츠 문화를 만드는 첫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선수단 부단장으로 동분서주했던 2년 전 도쿄올림픽 현장에서 경기 자체를 즐기는 어린 선수들을 목도했다.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친 것을 행복해 하는 선수들을 보며 달라진 시대, 땀과 눈물의 가치를 메달색으로만 정의해선 안 된다는 걸 배웠다. 지난 12일 결단식서 밝혔던 "선수들의 땀방울이 메달 색깔로만 정의되지 않길 바란다. 이번 대회에서 비인기, 비인지 종목들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우리나라가 스포츠 강국을 넘어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는 말은 그의 신념이다. "행복하면 좋겠다"는 염원도 여기서 비롯됐다. 그는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우리에게 스포츠는 국위선양이었다. 국민들이 열광했고, 장점도 많았다. 하지만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모든 면에서 선진국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스포츠인들도, 국민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메달색을 떠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양성'의 인정, 비인지종목을 응원해주세요

대회를 앞두고 마음에 새긴 또 하나의 키워드는 '다양성'이다. 일본 나고야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3세 출신, '비인지 종목' 럭비협회장을 선수단장으로 선임한 이유를 묻자 그는 "대한체육회와 학연, 지연도 없고, 기존 주류 스포츠도 아닌 비인지 종목 회장을 단장으로 선임한 건,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라고 했다.

최 단장은 스포츠를 인기, 비인기가 아닌 인지, 비인지로 나눈다. "이번 대회가 이름조차 모르는 종목, 얼굴도 모르는 선수들의 노력을 널리 알릴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프랑스에선 지금 럭비월드컵을 하고 있다. 전세계 수십억 팬들이 보고, 전세계가 열광하는데 국내선 모른다"고 했다. "모든 종목엔 역사, 배경, 선수, 팬이 있다. 우리나라는 올림픽, 월드컵만 주목받는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이 됐다. 스포츠 환경도 달라져야 한다. 다양한 스포츠 가치와 체육인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2위 일본과의 격차'에 대한 질문에 최 단장은 "종목 저변이 일본과 100배 정도 차이가 난다"고 현실을 짚었다. "럭비같은 비인지종목은 100배, 야구, 축구도 50배 차이"라고 했다. "과거 일본은 아마추어를 추구해왔지만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국가적 지원으로 프로처럼 운동하게 됐다. 저변이 두터운 나라가 운동에만 전념하게 됐으니, 옛날과는 차원이 다른 경쟁이다. 우리로선 정말 어려운 시대"라고 말했다. "결국 우리도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 모든 국민들이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스포츠를 즐기고, 재능있는 학생은 엘리트가 되고, 나머지는 취미로 평생 즐기고 스포츠 산업에도 진출하고…. 그러려면 학교체육,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창 시절 '부카츠(部活動·학교 동아리)'의 경험을 소개했다. "일본에선 부카츠 안하는 친구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나도 럭비, 야구, 축구를 했다. 학교 럭비선수로 뛰면서 룰을 지키고, 승자에게 박수를, 패자에게 존중을 보내는 '노사이드 정신'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스포츠와 교육의 '빛과 그림자'를 냉철하게 짚었다. "엘리트 체육을 키우면서, 보통 학생들은 체육을 안했다. 엘리트 안에도 또 그림자가 있다. 제2의 인생이 없다. 금메달을 딴다고 다 행복할까, 여기도 그림자가 존재한다. 한쪽에선 공부를 열심히 했고, 덕분에 선진국이 됐지만 거기까지 못 간 이들의 그림자도 있다. 서울대에 갔다고 다 행복할까. 여기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고 했다. "이 정책이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이끈 건 틀림없지만 이젠 공부도 스포츠도 즐기는 가운데 그 안에서 정말 잘하면 엘리트가 되고, 맨 위에까지 못가더라도 서로 존중하고 다양성이 평가받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

▶행복한 한가위, 다함께 "대~한민국!"

최 단장은 지난달 항저우아시안게임을 준비중인 전종목 지도자들에게 격려금 1억4000만원을 전달했다. "지도자들의 환경이 열악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현장에 가서 말로 격려하는 것보다 하루라도 빨리 지원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대한럭비협회장으로서 금메달 포상금 1억원도 내걸었다. 한국 럭비는 항저우에서 2002년 인천대회 이후 21년 만의 금메달에 도전한다. 최 단장은 "럭비도 33.3%의 금메달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했다. "일본, 홍콩이 강하지만 우리도 이제 대등하게 붙을 만큼 실력이 올라왔다"며 믿음을 전했다. "단장으로서 다른 비인지 종목을 집중적으로 챙기겠지만, 한국의 럭비 결승전은 꼭 직관하고 싶다"며 웃었다.

추석 명절, 안방에서 TV로 '팀코리아'를 응원할 국민들을 향해 "하나된 마음이 대한민국을 가득 채워 국민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후회없는 경기를 펼친 모습 자체로 충분한 기쁨과 행복을 느끼면 좋겠다"고 했다.(최 단장의 두 아이 이름은 '최선' '최다해'다.) 장남인 최 단장은 일본서 어린 시절 선친께 배운 그대로, 아들 선이에게도 한국의 전통, 제사 예법을 전수중이다. "대회 중 어디서 차례를 지낼지 고민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바다 건너 항저우까지 오셔서, 선수단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주시면 좋겠다"며 웃었다.

대한민국 선수단과 국민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을 요청했다. 최 윤 단장이 스케치북에 써내렸다. '"행복" 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 두 글자에 쌍따옴표를 달았다. 민창기· 전영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