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승호야.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신경쓸 거 없어. 그냥 축구만 재미있게 해."
항저우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주장 백승호(26·전북)는 지난 6월 작성한 개인 블로그를 이렇게 끝맺음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10대'란 제하의 블로그에서 중학생 나이인 십 대 유망주에게 세간의 관심과 언론의 비판이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토로했다. 인터넷을 멀리하고, 인터뷰를 지양했다. 늘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는 스트레스 가득한 일상에서 일찍 철이 들었다고 백승호는 털어놨다. 2019년 6월, 이란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뒤 엄마 얘기에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백승호와 그의 가족이 그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백승호는 스물여섯의 나이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대동초-매탄중을 거쳐 2010년 FC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입단해 처음 접한 소리가 '공격수인 너의 포지션을 미드필더로 변경하자'는 것이었다. 드리블하길 좋아하고 골을 잘 넣는 백승호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얘기였다. 자신감 하나로 '미드필더 백승호'에 적응해가던 2013년,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공식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18세 미만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경우, 선수들의 부모와 현지에서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이로 인해 백승호는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성장하던 이승우 장결희와 함께 2016년까지 공식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에 3년을 잃었다. 그후 2017년 자국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에 완패하며 16강에서 조기탈락, 눈물을 왈칵 쏟았다. '프로 경험의 부족'을 새삼 느꼈던 대회로 기억된다.
징계가 풀린 백승호는 짧은 기간 바르셀로나 B팀에서 활약하다 1군 데뷔전을 치르지 못하고 2017년 지로나로 이적했다. 스물한 살이던 2019년 1월에야 스페인 성인무대에 공식 데뷔했다. 공교롭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데뷔전 상대팀은 바르셀로나였다. 백승호는 지로나와 다름슈타트(2019년~2021년)에서 유망주의 티를 벗었다.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백승호는 2016년 리우올림픽,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부상 등의 이유로 번번이 낙마했다. 또래들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며 한뼘 성장하는 모습, 병역특례를 받는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봤다. 2021년 유럽에서 K리그로 돌아오는 과정에선 수원 삼성과 합의서 위반 논란을 빚었다. 성장하는 과정, 입단하는 과정 뭣하나 술술 풀리는 법이 없었다. 도쿄올림픽 최종명단 탈락 후 "무언가 끝나면 또 새로운 시작이 있으니까. 항상 그래 왔고 또 한번 잊고 싶지 않은 하루다"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어린 나이에 일찍이 성장통을 겪은 백승호는 전북 입단 후 부활의 날갯짓을 펼쳤다. 김상식 전 전북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아래 빠르게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부상했다. 이런 활약을 토대로 국가대표팀 레귤러로 자리매김했고,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 출전해 브라질과의 16강전서 시원한 중거리포로 골맛을 봤다.
어느덧 스물여섯이 된 백승호는 올해 국군체육부대 1차 합격자로 뽑혔다. 오는 12월 김천 상무 '입단'을 앞두고 꿈꾸던 기회가 찾아왔다. 황선홍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이 박진섭(전북) 설영우(울산)와 함께 백승호를 와일드카드로 발탁했다. '중원의 핵'으로 뽑았을 뿐 아니라 주장 완장까지 맡겼다. 3회 연속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을 노리는 황선홍호의 키를 쥐었다. 남다른 책임감으로 16일 선수단과 함께 결전지 항저우로 출국한 백승호는 "금메달을 따야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다짐했다. '울보' 백승호는 이젠 기쁨과 환희의 눈물을 흘리고 싶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