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원장님이 왜 거기서 나와?"
지난 28일 강원도 태백에서 여름 전지훈련 중인 전주 KCC가 황지고 체육관에서 코트 훈련에 한창이던 오후 5시. 선수단은 체육관에 불쑥 등장한 팀 주치의 차민석 원장(45·세종스포츠정형외과)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차 원장은 이날 서울 광진구 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재활센터 실장과 함께 병원 승합차를 몰고 4시간여를 달려왔다. 선수단에는 3년여간 주치의를 맡고 있는 차 원장이 낯 익은 얼굴이긴 하지만 외딴 전지훈련장에서 만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병원 진료도 바쁘실텐데, 이 먼 곳까지 어쩐 일이세요?"라는 주변의 안부 인사에 가쁜 숨을 고르며 내뱉은 차 원장의 대답은 간결했다. "선수들이 눈에 밟혀서요."
그랬다. 차 원장은 농구에 미친 '열혈 의사선생님'이었다. 흔히 이런 경우면 전지훈련 점검을 겸해 폭염도 피해간다는 '선선페스티벌' 개최지에서 바람도 쐬고 갈 것으로 예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차 원장은 29일 예약된 병원 진료를 위해 오전 5시30분 시외버스 첫차를 타고 상경하는 강행군 일정이었다. 동행한 재활실장까지 고생할 필요는 없다며 승합차를 맡기는 대신 새벽 버스를 타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숨돌릴 겨를이 없었다. 서둘러 저녁식사를 마치고 밤 사이 선수단 숙소에서 일일이 근육 상태 등을 체크해주겠다며 초음파 진료기 등 의료장비를 승합차에 싣고 왔다. 차 원장이 전지훈련지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년여간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방문하지 못했던 차 원장은 "올해만큼은 선수들 부상 예방을 위해 자투리 시간이라도 내기로 작정했다"며 고집스럽게 길을 나섰다.
차 원장은 "태백에서는 체력 강화 훈련 강도가 다소 높기 때문에 근육에 무리가 온 선수는 없는지, 부상을 겪었던 선수들의 현재 상태는 어떤지 의학적으로 중간 체크를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차 원장이 이처럼 농구에 '진심'일 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학 시절 의대 농구 동아리에서 활동할 정도로 '농구광'이었다. 상무 복무중인 KCC의 간판 송교창에겐 '농구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다. 2021년 10월 22일 송교창이 대구 원정 경기 도중 왼손 4번째 손가락 뼈가 살갖을 뚫고 나올 정도로 심한 골절상을 했을 때다. 당시 금요일 늦은 밤이라 긴급 수술을 해 줄 병원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차 원장이 구세주가 됐다. 차 원장이 잘 알고 지내는 대구의 수부외과 명의를 연결해 준 덕분에 빠르게 성공적으로 수술할 수 있었다.
조진호 구단 사무국장은 "지난 시즌 경기 중에 정창영이 손을 살짝 다쳤을 때도 관중으로 경기 보러 왔던 차 원장이 빛의 속도로 벤치로 달려 내려와 친자식처럼 부상을 살펴준 적도 있었다. 열정만큼은 최고"라고 말했다.
차 원장은 "2년 전 유병훈이 고관절 염증이 심해서 고생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건강하게 훈련하는 걸 보면 흐뭇하다"면서 "처음엔 의사와 환자로만 만났던 선수들과 정서적 교감도 하는 관계가 되니 보람을 느낀다. 다음 시즌에는 내가 할 일이 없어도 좋으니 별 부상 없이 보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태백=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