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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통산 800승 영예기수→초보 조교사, 함완식 조교사의 '초강대국 플랜' "말과 호흡하며, 마주님들의 믿음에 보답하는 조교사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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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기수 시절의 로망이었던 조교사, 이제 그 꿈을 위해 달리겠습니다."

경마의 '조교사'는 생소한 직군이다. 경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단순히 경주마를 관리하고, 경기 출전을 준비시키는 것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조교사의 매우 일부 업무영역일 뿐이다.

사실 대단히 특화된 직업이다. 마치 프로 스포츠의 감독과 같다. 독립된 마방을 지휘하면서 마주들과 계약을 통해 말들을 받고, 적절한 사육과 훈련으로 준비시킨 뒤 기수들에게 경주 전략까지 지시해 우승을 만들어내는 '종합 지휘관'이다. 때문에 조교사는 기수들의 로망이다. 게다가 원한다고 아무나 할 수도 없다. 한국마사회에 소속된 기존 조교사가 은퇴해야 신임 조교사 등록이 가능하다.

이런 조교사의 길에 첫 발을 내디딘 '새내기 조교사'가 경마 팬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다. 7월 1일자로 '초강대국'이라는 상호명으로 출범한 함완식(45) 조교사다. 아직 개업한지 채 한달도 되지 않는 함 조교사가 경마팬들의 기대를 받는 이유는 그가 바로 한국 경마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레전드' 기수 출신이기 때문이다.

함 조교사는 1998년 6월에 데뷔한 이래 지난 6월에 은퇴할 때까지 기수로만 정확히 25년을 채우고 은퇴한 함 조교사는 통산 806승(6381전)을 달성하는 동안 11개의 대상경주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특히 지난 2015년에는 500승을 달성한 뒤 페어플레이 정신과 꾸준하고 성실한 노력을 인정받아 역대 8번째로 '영예기수' 타이틀을 받았다.

현역시절 늘 환한 미소와 세련된 매너로 '경주로의 신사'라는 별명을 얻었던 함 조교사는 지난 6월 21일 제8경주로 열린 '제22회 YTN배(G3)' 대상경주를 마지막으로 정든 고삐를 놓았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을 실천하며 기수로서의 삶을 마감한 것.

하지만 '기수 함완식'이 작별을 고하는 동시에 '조교사 함완식'으로서의 '세컨드 라이프'가 시작됐다. 함 조교사는 "조교사가 되는 것은 기수 데뷔 직후부터 키워온 또 다른 꿈이었다. 프로 구단의 감독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조교사가 되는 것은 사실 모든 기수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조교사로 개업하고 보니 모든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라고 말했다. 최고의 기수에서 이제는 '새내기 조교사'가 된 함완식 조교사의 포부와 희망을 들어봤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채운 25년 기수인생

함 조교사는 고교시절 취업을 준비하다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마사회 기수 모집에 응모했다. 처음 마주하는 말이었지만, 그는 운명적인 일이라는 걸 직감했다고 한다. 기수 교육을 마치고, 1998년 처음 데뷔한 이후 25년간 꾸준히 레이스를 펼칠 수 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함 조교사는 "경마 기수를 하며 인생이 바뀌었다. 그간 셀 수도 없는 많은 부상을 입기도 하고, 또 지긋지긋한 체중 감량과 싸워야 했지만, 늘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이었다. 나와 내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사명감이 나를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런 함 조교사는 현역시절부터 꾸준히 기수 이후의 삶을 준비해왔다. 그는 "신인 기수 때 목표가 500승을 하고 영예기수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기수로서는 목표치를 완성했다. 조금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박수 칠 때 나오고 싶었다"면서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기수 때 조교사님들의 작전지시를 받고, 훈련 하면서 '나도 하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기수 시절에도 조교사님들의 일을 관찰하고, 아예 2017년에는 부산에 내려가 외국인 조교사들의 시스템과 훈련 체계등을 공부했다"고 말했다.

'최고의 기수'였지만, 그는 '다음'을 늘 염두해두고 있던 것. 함 조교사는 "사실 기수 생활을 좀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체중 감량이 너무 힘들었다. 기수 때는 거의 하루에 한끼만 먹으며 일년 내내 운동하고 감량하는 삶이었다. 40대를 넘기며 그 일이 점점 더 힘들었다. 조교사로 변신할 시기가 다가왔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경마 팬들과 마주님들께 최대한 박수를 받을 때 기수를 마무리하고, 새출발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초강대국' 마방 타이틀의 비화와 거침없는 목표

하지만 막상 조교사로 변신하자 새로운 역경이 눈앞에 다가왔다. 함 조교사는 "지난 6월에 은퇴하고 서둘러 마방 꾸리기에 나섰다. 힘들 것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마주님 들에게 다 연락드리고, 말을 따내오고 하는 일들이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희열이 드는 순간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신임 조교사는 자신의 마방에 말을 채워야 한다. 보통 20마리 정도의 말을 관리하는데, 개별 마주들과 접촉 해 말을 유치해야 한다. 그러나 마주들 입장에서는 '새내기 조교사'에게 말을 내어주기가 쉽지 않다. 함 조교사는 "처음에는 마주님들이 쉽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문의가 늘어났다. 다행히 기수 때 좋은 관계를 맺은 마주님들이 연락을 많이 주시고, 제가 열심히 찾아 다니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새 말들을 거의 다 사주신 덕분에 이제 어느 정도 구색이 맞춰졌다"며 "나를 믿고 맡겨주신 만큼 최고의 성적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기수 시절에 쌓아온 노하우, 말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신뢰를 주는 조교사가 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함 조교사가 설립한 마방의 이름은 '초강대국'이다. 늘 겸손하고, 예의바른 기수였던 함 조교사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거창한 타이틀. 여기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었다. '초강대국'은 기수 초창기 시절 그에게 '말과 경주'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 말의 이름이었다.

함 조교사는 "806승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승리가 바로 4승 때였다. 그때 말 이름이 '초강대국'이었다. 데뷔 후 1년 반 쯤 지나 타게 된 말인데, 전형적인 선행마였다. 경주에서 선행마로 앞서나가는 데 마지막 순간 채찍질을 했더니 바로 서버렸다. 너무 충격을 받았다. 열심히 달리는 말은 때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 일 이후 기수로서 한층 성장하게 됐다. 각 말들의 습성을 잘 이해해야 좋은 경주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그가 이 말의 이름을 새로운 마방의 상호명으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말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경주의 디테일 한 부분을 챙기면서 함께 성장하는 조교사가 되려고 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목표를 이루다 보면 그랑프리, KRA컵 등에서도 우승하는 영광을 거둘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회가 닿으면 해외까지 진출하고 싶다"고 자신의 목표를 밝혔다.

함 조교사는 늘 새벽 5시에 마방에 나와 경주마들과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그가 일궈나갈 '초강대국'의 미래가 기대된다.

과천=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