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제가 사기꾼 집단의 수괴인가요."
전희철 서울 SK 감독(50)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SK의 농구 색깔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사기 치고 있습니다"라고도 했다. 물론 유머를 곁들인 표현이다. 웃으며 뱉은 말이지만 전 감독에겐 만감이 교차한다. 자랑스러우면서도 걱정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SK의 '사기농구'는 최근 SK의 극과 극 경기 스타일에서 비롯된 신조어다. SK는 10점 이상 뒤져있다가도 경기 후반부에 가서 대역전승을 만들어 내는 패턴을 자주 보여왔다. 지난 12일 리그 선두 안양 KGC와의 빅매치에서도 3쿼터 한때 14점차로 밀려있다가 종료 4.8초 전 허일영의 위닝샷으로 74대73, 짜릿한 역전승을 만들었다. 이날 경기에서 SK는 3쿼터 초반 2위 등극을 노리는 상위팀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경기력이 엉망이었다. 막강 공격 카드 김선형-자밀 워니를 보유하고도 슛이 지독하게 림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점수차가 크게 벌어졌다가 힘겹게 좁히기는 했지만 3쿼터를 49-58로 마쳤을 때 경기 흐름으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SK의 패색이 짙어보였다.
하지만 이게 웬걸. 4쿼터 시작과 함께 때를 기다렸다는 듯, 워니가 그렇게 들어가지 않던 주무기 플로터가 터지기 시작하더니 혼자서 9점이나 쓸어담았다. 여기에 답답하던 외곽포도 식스맨 송창용의 손에서 터졌고, 김선형과 백업맨 선상혁까지 빠른 득점포를 살리면서 순식간에 전세가 뒤집혔다. 65-60으로 역전이 되기까지 4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런 양상을 두고 전 감독은 패하는 척 하다가 상대가 방심한 사이 뒤통수를 치듯 몰아쳐 뒤집기를 한다고 해서 "사기를 친다"는 비유를 한 것이다.
SK의 '사기농구'가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보는 팬들은 흥미 만점이다. 끝까지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박진감이 넘친다. 그도 그럴 것이 시즌 세 번째 만원 관중을 기록한 이번 KGC전에서 잠실학생체육관은 함성 데시벨이 어찌나 높았던지 챔프전인 줄 착각이 들 정도였다.
SK가 일단 역전에 성공해도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시소게임을 반복하니 보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가비지 타임'도 거의 없다. 보통 '가비지 타임'은 승부가 거의 기울었을 때 출전시간이 적었던 선수들의 체험시간으로 활용되는데, SK의 경기에서는 그럴 겨를이 없다.
전 감독은 어찌되었든 '승리'라는 결과물을 가져오고 흥미 만점이었으면 다행이라면서도 고민도 크다. 일단 매 순간 가슴 졸이는 스트레스 때문에 "수명이 줄어들 것 같다"고 하소연이다.
여기에 '퐁당퐁당' 경기력은 강한 팀으로서 보여서는 안될, 풀어야 할 과제임을 잘 알고 있다. 전 감독은 "역전승 안 해도 좋고, 큰 점수차로 승리하지 않아도 좋으니 1쿼터부터 4쿼터까지 안정적인 경기력을 찾았으면 좋겠다. 빨리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워니와 허일영도 "기복이 심한 플레이를 하지 않기 위해 선수들 모두 반성하고 개선하려고 한다"며 전 감독의 고민에 동의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