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기반 위에 새로움을 가득 채워나가겠다."
지난 2000년 온게임넷이란 이름으로 정식 개국한 OGN은 한국은 물론 글로벌 e스포츠의 역사를 만들어 온 세계 최초의 게임 방송국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패러다임 속에 케이블TV를 중심으로 하는 OGN은 경쟁력을 잃게 됐고, 결국 2년 전 새로운 프로그램 제작과 운영을 포기하고 기존 아카이브만 송출하는 사실상의 폐국 상태까지 몰리게 됐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놓은 레거시(유산)와 아카이브의 소실을 안타까워 하는 e스포츠 팬들과 관계자들의 열정은 글로벌 e스포츠 전적 플랫폼인 OP.GG(오피지지)가 OGN을 인수하게 되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고, 지난해 8월 다시 새로운 방송국 ID를 선보이며 송출을 시작했다.
물론 이미 달라진 트렌드에서 기존 방식을 되풀이 할 수도, 떠난 인력을 모두 불러모을 수도 없었다. OGN과 15년을 넘게 함께 한 남윤승 OP.GG 스튜디오 그룹장 겸 OGN 대표가 OGN의 부활을 위해 지향점으로 삼은 것은 글로벌 콘텐츠 스튜디오로의 자리매김, 신기술 활용 그리고 대중성을 확보한 콘텐츠 강화 등 3가지였다. 그리고 8개월여가 흐른 시점에 다시 만난 남 대표는 "2년 간 멈춰있던 제작과 사업의 기반을 만드는 것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OGN 22년간의 역사의 기반으로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움직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선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는 '글로벌'이다. 게임과 e스포츠가 가지는 비언어적인 특징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좀 더 빠르고 효과적이며, 수용성 높게 접근하기 위해선 인적인 구조뿐 아니라 제작 시스템과 방식을 모두 글로벌 단위로 최적화 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남 대표는 "우선 제작진 모두 글로벌 경험이 많고 해외 시청자나 크리에이터와 소통하는데 언어적 문화적 문제가 거의 없는 인력들로 구성했다"며 "해외의 어떤 파트너와 일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시스템을 갖춘 셈이다. 모회사인 OP.GG가 '온라인을 통한 진정성 있는 인간관계'를 모토로 하고 있는데,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충분한 협업이 가능하도록 각종 온라인 협업 툴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즉 제작 PD는 한국에 있지만, 출연자는 미국에, 편집자는 싱가포르에, 디자이너는 루마니아에 있는 구조다. 이는 국내외의 주요 게임사들도 글로벌 인력의 활용을 위해 쓰고 있는 방식이다.
남 대표는 "한국의 PD가 녹화를 마치고 영상을 업로드한 후 잠자리에 들면, 지구 반대편의 인력이 편집을 하고 다른 시간대의 사람이 마무리를 한 후 다음날 아침에 국내 PD가 결과물을 활용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1편의 콘텐츠를 만드는데 5일이 걸리지만, 올해 안에 지구가 자전을 한바퀴하면 그 시간에 맞춰 콘텐츠 1편이 나오는 협업 방식으로 고도화 시킬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P2E 게임을 활용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포맷을 '복면가왕' 프로그램을 만든 박원우 디턴 대표와 협업, 태국에서 제작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게임을 e스포츠로 만들면서 늘 새로운 기술을 접목했듯, 가상인간을 적극 활용한 콘텐츠를 만들어 후반 작업을 하고 있으며 OGN의 아카이브 가운데 명작들을 OP.GG의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HD급으로 변환해 곧 선보일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 올해 초 선보였던 '우리 아이 게임사용설명서'와 같이 학부모와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콘텐츠 제작 혹은 확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 대표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재미와 의미를 함께 담았다는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며 "아이와 부모의 갈등을 산업적 이해관계나 중독의 관점이 아니라, 세대간 소통을 위한 도구로서 게임의 효용성을 보여주는데 좀 더 초점을 맞춰 정식 시즌 제작을 하고 있다. 4월 중순부터 방송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남 대표는 "OTT에 공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게임과 연애가 결합된 프로그램 등 국내외의 다양한 팬분들이 좋아할만한 콘텐츠를 계속 구상하고 현실화 시키고 있다"며 "그동안 OGN에 대한 적지 않은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실 것이다. 새롭게 출발한다는 각오와 스타트업의 자세로 과감한 시도들을 해보고 있으니, 많은 기대와 격려 부탁드린다"고 힘줘 말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