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KBO리그에서 3년 이상 안정적으로 장수한 외국인 투수를 꼽으라면 2010년 이후만 살펴 보더라도 더스틴 니퍼트, 밴 헤켄, 메릴 켈리, 브룩스 레일리, 조시 린드블럼, 브랜든 나이트, 드류 루친스키, 헨리 소사, 타일러 윌슨 등 수두룩하다.
그러나 이 가운데 메이저리그에 입성해 성공가도를 밟은 투수는 둘 뿐이다. 켈리(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레일리(뉴욕 메츠)다. 올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입단한 루친스키는 지켜봐야 한다. 둘은 KBO가 미국에 되팔았다고 해서 '역수출품'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켈리는 애리조나의 2선발이고, 이번 겨울 메츠 메츠로 옮긴 레일리는 팀내 유일한 좌완 셋업맨으로 기대감이 크다.
역수출품 1호로 평가받는 켈리는 메이저리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2015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했다. 당시 SK는 "메이저리그를 꿈꾸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확실하다는 장점이 있다. 투구폼이 안정적이고 팔 스윙이 좋다"고 했었다.
켈리는 2018년까지 4시즌 동안 48승32패, 평균자책점 3.86의 수준급 기록을 남겼다. SK에서 성장해 메이저리그의 주목을 받은 그는 2020년 애리조나와 2년 550만달러에 계약해 꿈을 이뤘다. 첫 시즌 13승14패, 평균자책점 4.42를 마크하자 애리조나 구단은 2021년(425만달러)과 2022년(525만달러) 팀 옵션을 실행했다.
그리고 지난 시즌을 앞두고 2년 1800만달러 계약을 추가했다. 사이닝보너스 100만달러에 2023년과 2024년 각 800만달러의 연봉을 받고, 2025년에는 100만달러의 바이아웃에 700만달러의 팀 옵션까지 걸었다.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가 받는 조건을 그대로 적용했다.
MLB.com은 '켈리의 꾸준함과 내구성은 디백스가 계약을 연장한 결정적 이유다. 2022년에도 그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33경기에 선발등판해 200⅓이닝을 던져 이 부문 전체 공동 1위를 차지했다'고 평가했다. KBO 출신을 통틀어 빅리그에서 이렇게 롱런하는 투수는 류현진과 켈리 밖에 없다.
마이크 헤이즌 애리조나 단장은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야구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심신 상태를 스스로 잘 유지한다. 클럽하우스에서 모범적인 리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켈리와 같은 해 KBO에 입단한 레일리는 초라하나마 메이저리그 경력자였다. 2012~2013년, 시카고 컵스에서 2시즌 동안 14경기를 던졌다. 그러나 2014년 시즌 내내 마이너리그를 벗어나지 못하자 결국 KBO의 오퍼를 받아들였다.
그는 롯데에서 5시즌을 뛰었다. 152경기에 등판해 48승52패, 평균자책점 4.13을 기록했다. 5년 통산 910⅔이닝을 던졌다. 한 번도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연평균 182이닝을 던졌다. 특히 왼손타자 킬러로 유명했다. LG 트윈스 박용택은 레일리 등판 날 라인업에서 제외되곤 했다.
이 부분을 신시내티 레즈가 눈여겨보고 2020년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그해 후반기 메이저리그로 승격한 레일리는 곧바로 휴스턴 애스트로스 트레이드된 뒤 불펜투수로 자리잡더니 2021년 200만달러의 옵션을 실행받았다. 켈리와 마찬가지로 빅리그의 길이 열린 것이다.
그해 58경기에서 2승3패, 10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4.78을 올린 레일리는 FA가 돼 탬파베이 레이스와 2년 1000만달러에 계약했다. 작년 레일리는 60경기에 등판해 53⅔이닝을 던져 1승2패, 25홀드, 6세이브, 평균자책점 2.68을 올리며 정상급 셋업맨으로 올라섰다. 스탯캐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레일리의 배럴 비율은 상위 1%, 하트히트 비율은 상위 2% 안에 들었다.
둘은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미국 대표팀에 나란히 발탁됐다. 켈리는 애덤 웨인라이트와 함께 원투 펀치, 레일리는 좌완 불펜으로 주목받고 있다. 마이너리그와 KBO를 거쳐 빅리그에 입성하더니 성조기 마크를 달고 세계 최고의 야구 국가대항전에 출전하게 된 것이다. 역수출품 신화라고 칭할 만하다.
켈리는 MLB.com 인터뷰에서 "지난 WBC 하이라이트를 찾아봤는데 굉장히 역동적이더라. 이번에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 대회를 치를텐데 그들로부터 뭔가를 배우려고 한다. 궁금한 거 물어볼 선수 하나를 점찍어 뒀다. 그에게 말을 걸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레일리 역시 "빅리그에서는 그 같은 경기를 하지 않는다. 매 경기가 이기거나 지면 집에 가는 것이다. 모든 팀이 올인할 것이다. 멋진 경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WBC 대진표상, 켈리와 레일리가 한국 타자들을 상대하려면, 한국과 미국 모두 4강에 진출해야 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