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츠데일(미국 애리조나주)=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그가 떠난 지 5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라운드에 선 모습은 그대로였다.
2023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출전하는 네덜란드 대표팀엔 반가운 얼굴이 있다. 2017~2018시즌 KIA 타이거즈에서 활약한 로저 버나디나(39·네덜란드)가 주인공. 선수로 황혼기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버나디나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하며 대표팀의 한축 역할을 하고 있다.
KIA 뿐만 아니라 KBO리그 팬이라면 버나디나라는 이름은 쉽게 잊을 수 없다. 2017년 KIA 유니폼을 입은 버나디나는 시즌 초 부진을 딛고 139경기 타율 3할2푼, 27홈런 111타점을 기록하며 그해 KIA의 정규시즌 1위 및 한국시리즈 제패에 힘을 보탰다. 뛰어난 기량 뿐만 아니라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으로 KIA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최강 KIA 타이거즈 버나~디나~"로 시작하는 그의 응원가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고, 현재까지 KIA 팀 응원가로 쓰이고 있다.
버나디나는 여전히 한국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22일(한국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솔트리버필드앳토킹스톡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연습경기에 나선 버나디나는 한국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그는 "(WBC를 통해) 한국팀을 상대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게 기쁘다. KIA 시절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나성범 양현종이 대표팀에 포함됐다고 알고 있다. 나와 함께 뛰진 않았지만, KIA의 젊은 좌완 투수(이의리)가 합류한 것도 알고 있다"며 "모든 한국 선수와 만나고 싶다. 누구 하나 꼽기 힘들 정도로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정말 잘 대해줬다"고 미소 지었다.
버나디나는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이 큰 힘이 됐다. 내겐 굉장한 경험이었다. 한국을 떠난 뒤 여러 나라에서 뛰었지만, 내겐 한국 팬들이 여전히 최고의 팬"이라며 "좋은 경험을 하게 해준 한국과 팬들에게 감사하다. KIA 시절은 내게 소중한 추억"이라고 감회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또 "작년 KIA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소크라테스 브리토가 정말 최고의 타자가 될 것 같다"며 "소크라테스가 올 시즌에도 좋은 활약을 펼쳐 2017년 (나)처럼 KIA가 우승하는 데 힘을 보태길 바란다"고 응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WBC는 버나디나에 낯설지 않은 무대. 한국 야구에 '타이중 참사'로 기억되는 2013년 대회에서 버나디나는 네덜란드 대표로 나서 준결승행에 힘을 보탠 바 있다. 버나디나는 2013 WBC에서의 한국전을 떠올리며 "너무 많은 투수가 나를 힘들게 했다"고 웃은 뒤 "LG 좌완 선발(차우찬·현 롯데)과 두산 마무리 투수(함덕주·현 LG)를 상대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두 선수가 이번 대표팀에 없다고 하자 "OK"라고 말한 뒤 크게 웃었다. 이번 대회 목표를 두고는 "8강에 오르는 게 첫 목표다. 네덜란드는 이번 WBC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선수단 모두 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WBC에 나서는 강한 팀을 이기기 위해선 하나된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네덜란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결승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열정은 꺼지지 않은 눈치. "몸이 허락하는 한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한 뒤 엄지를 세운 버나디나의 WBC 활약에 관심이 쏠린다.
스코츠데일(미국 애리조나주)=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