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지금 존하곤 확실히 많이 다릅니다. 선수들도 깜짝깜짝 놀라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던 시대는 지났다. 비디오판독이 도입된지도 수십년, 이제 궤적 추적 시스템도 널리 사용된다. 인아웃, 오프/온사이드 여부를 사람의 눈이 아닌 인공지능(AI)와 기계로 판정하고 있다.
야구 역시 비디오판독을 폭넓게 도입했다. 슬라이딩과 태그가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 파울 라인을 스치는 타구 등은 비디오 판독을 통해 번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홈플레이트 위의 스트라이크존 판정만큼은 주심의 고유 권한으로 여겨졌다. 주심마다 다른 고유의 성향이나 존을 빠르게 눈치채는 것도 뛰어난 선수의 덕목이었다.
AI의 발전은 여기까지 넘본다. 이른바 '로봇 심판(AI 심판)'으로 불리는 자동 볼·스트라이크 시스템(ABS)이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광범위하게 테스트되고 있다. 주심은 AI의 콜에 따라 스트라이크/볼을 외칠 뿐, 존 판정 자체는 AI에게 맡기는 시스템이다.
KBO 심판들은 스프링캠프 시즌이면 각 팀 캠프를 방문해 적응 훈련을 시작한다. 라이브배팅(피칭)을 지켜보며 눈을 익히고, 다가오는 오키나와 연습경기와 시범경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개막에 대비한 현장 감각을 끌어올린다.
최수원 심판은 '안경에이스' 최동원의 동생이자 KBO리그 데뷔 30년차, 심판 조장을 맡고 있는 베테랑이다. 그는 'AI 판정'에 대해 "시대의 흐름"이라며 웃었다.
"심판들은 대부분 AI 도입에 반대하지 않아요. 공 하나하나에 민감한 팬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죠. 심판이 할 일은 볼·스트라이크 판정 말고도 많거든요. 거부 반응은 오히려 현장 쪽에서 나옵니다. '이건 야구가 아니다' 이런 얘기도 들어봤고."
KBO 심판진은 이미 2군 로테이션을 통해 AI 심판에 익숙해지는 훈련도 하고 있다. 허구연 총재 역시 AI 심판의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 다만 최 심판은 "직접 겪어보면 아직은 많이 놀랄 겁니다"라고 했다.
"좌우는 넓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조금 좁아질 것 같습니다. 심판들이 AI보다 더 넓게 보더라고요. 다만 위아래 존은 많이 넓어지고 달라질 겁니다. (3차원 존이기 때문에)차이가 많이 납니다. 선수들도 당황하는 경우가 많아요. 부정확하다기보다 상상을 초월하는 판정이 종종 나옵니다. 투수나 타자가 '지금 일부러 이러나?'하고 의심한 적도 있어요. AI라고 알려줘야 납득할 정도로."
최 심판은 "(3차원)앞쪽 존을 살짝 통과하는 각도로 변화구를 던지라고 한들 그렇게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몇 명이나 있겠어요"라며 웃은 뒤 "아무래도 외국인 투수들에게 좀더 유리할 거고…김광현(SSG 랜더스)이나 안우진(키움 히어로즈) 같은 투수들은 지금보다 잘 던지겠죠"라고 덧붙였다.
메이저리그는 독립리그와 마이너리그에서 수년간 AI 심판 테스트를 진행했다. KBO리그도 2020년부터 퓨처스리그 일부 경기에 AI 심판을 도입했다. 2024년 1군 도입 논의도 있었다. 메이저리그에 AI 심판이 도입될 경우 곧바로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갖췄다. 오랜기간 야구에 녹아든 업체들과 신규 업체간의 치열한 물밑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1군 도입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야구 근본론자들의 반대 외에도 따라가기 힘든 변화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도입하고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우린 선진야구를 따라가는 입장이니까…(AI 심판이)메이저리그에서 1군에 올라오지 않는 걸 보면 아직은 완전하지 않은가보다 생각합니다. 그때까진 우리 심판들이 더 노력해야죠."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