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산(미국 애리조나주)=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일본에겐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되잖아요(웃음).
2023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1라운드 2차전인 일본과의 맞대결을 떠올린 투수 구창모(26·NC 다이노스)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 야구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다. 시드니-베이징의 환희, 도쿄돔에서의 감격은 추억이 된 지 오래. 하지만 최근 수 년간 일본전에서 한국 야구는 웃지 못했다. 2019 프리미어12 준우승에 이어 2020 도쿄올림픽에선 일본에 막혀 노메달 수모에 그쳤다.
구창모는 2017년 11월 16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도쿄돔에서 펼쳐진 2017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개막전에서 4-1로 앞선 6회 등판한 구창모는 야마카와 호타루(세이부 라이온스)에게 투런포를 얻어맞았다. 이 홈런으로 추격점을 내준 대표팀은 일본과 연장 혈투 끝에 7대8로 패했다. 성인 대표팀 데뷔전이었던 이 경기는 여전히 구창모에게 선명한 '악몽'이다. "홈런을 맞은 공은 직구였다. 던졌던 공까지 기억난다."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부상으로 2년여 간 재활했던 구창모는 지난해 NC에서 토종에이스 부활을 알렸다. NC는 시즌 뒤 구창모와 6+1년 최대 132억의 비FA 다년계약을 안기며 그의 가치를 증명했다. NC를 넘어 KBO리그 대표 투수로 거듭난 그는 다시 한 번 '극일'의 사명감을 안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구창모는 "2017년 이후 처음 (태극마크를) 달아봤다. 그때랑 많이 다른 것 같고, 자부심도 커졌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시선은 일본전에 맞춰져 있다. 구창모는 일본전 등판 가능성에 대해 "어떤 경기를 나가든 최선의 상태를 만드는 게 내 임무"라며 "한일전에 나가게 된다면 어떻게든 무조건 이겨야죠"라고 각오를 다졌다.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악몽을 활약 의지를 불태우는 연료로 삼았다.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된다. 나는 일본전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만약 (이번 대회에서) 일본전에 나가게 된다면 꼭 설욕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도쿄올림픽 패퇴 뒤 서럽게 눈물을 흘렸던 'KBO리그 최고 FA' 포수 양의지(36·두산 베어스)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양의지는 "이번 대표팀이 거의 마지막이라 생각한다. 또 두 번이나 일본전에 크게 좀 맞은 기억이 있다. 그 부분을 마음에 담고 더 열심히 준비를 잘 해야 할 것 같다. 꼭 갚아주고 싶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소속팀 캠프지인 호주에서 인천국제공항을 거쳐 투산까지 장거리 이동을 한 피로도 잊었다. 양의지는 "(대표팀 합류 첫날인) 어제 (출전국 선수) 영상을 받아 어느 정도 봤다. 이름, 특징 등을 좀 더 자세하게 볼 생각"이라며 "일본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상이 많다.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영상은 많이 봤다"고 밝혔다. 또 "야마다 데쓰토(31)에게 계속 결정적인 걸 맞았다. 또 무라카미 무네타카(23·이상 야쿠르트 스왈로스) 등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연이은 국제 대회 부진, 가장 뼈아팠던 것은 일본전 패퇴였다. 이번 WBC는 그 어느 때보다 성공에 대한 열망이 큰 대회. 그 중심엔 일본이라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태극마크를 짊어진 KBO리거들의 가슴은 '극일'의 열망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투산(미국 애리조나주)=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