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스키 인구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는 것이 목표이자 꿈이다."
50년 스키 '외길인생' 박재혁 대한스키지도자연맹(KSIA) 회장(60)의 말이다. 그의 꿈은 간결했지만, 그 무게는 묵직했다.
지난 7일 강원 평창의 용평리조트에서 마주한 박 회장은 무척이나 바쁜 모습이었다. 제29회 스키 레벨2 1차 테스트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6일 250명, 7일 250명 등 총 500명의 참가자를 심사했다. 여기에 중간중간 회의까지 참석해야 하는 탓에 시간을 쪼개 활용하고 있었다. 박 회장은 24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절대 스키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스키를 벌써 50년째 타고 있다. 지금도 탈 때마다 재미있다. 스키는 평생 탈 것"이라며 웃었다.
▶대한민국 스키의 '살아있는' 역사
1963년생인 박 회장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스키와 인연을 맺었다. 올해로 스키 인생 50주년을 맞았다. 그는 "그때는 스키 세트를 사려면 소 한 마리를 팔아야 할 정도였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 살았지만, 스키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작은 아버지와 형이 스키를 탔었다. 형을 따라다니다가 우연히 선수를 하게 됐다. 사실 집에서는 스키 선수를 하지 말라고 했었다. 은사님이 나를 스키 쪽으로 이끌어줬다.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그는 "예전에는 스키장이 없었다. 그냥 산에서 눈을 다져서 탔었다. 스키를 탈 수 있는 높이까지 30~40분을 걸어 올라갔다. 그리곤 1분 만에 쫙 내려왔다. 그래도 나는 그런 시기를 3~4년 정도만 보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용평스키장이 생기면서 시설을 누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키를 놓지 않았던 것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흥미에 노력이 더해지니 막을 자가 없었다. 박 회장은 1986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회전 종목에서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대회전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한국 스키 역사상 국제대회 '첫' 메달이었다. 박 회장은 한국 스키에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스키 인생에서)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딴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외국 선수들을 제치고 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국제대회 첫 메달이라는 점도 감사하다"고 했다.
▶국가대표팀 감독부터 지도자연맹 회장까지, '오직' 스키
박 회장은 선수 은퇴 후에도 한국 스키 발전을 위해 온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지도자로 변신해 한국 스키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이후 대한스키협회 상임이사를 거쳐 2018년부터 지도자연맹을 이끌고 있다. 그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현장에서 경기운영 전문인들을 이끌고 대회를 든든히 지켰다. 안전시설부터 경기 코스, 정설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덕분에 평창동계올림픽은 국제스키연맹 및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평창동계올림픽 직후 스키 인구가 늘었지만, 지금은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린 현재는 해외에 갈 수 있기 때문에 스키장에 많이 오지 않으시는 것 같다. 수도권 스키장도 세 곳이 문을 닫았다"고 설명했다.
엘리트 성장도 뚜렷하지 않다. 박 회장은 "한국의 알파인 스키는 굉장히 잘하고 있다. 일본 선수층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가 일본 선수들을 이긴다. 스키 인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 엘리트 선수들은 잘 하고 있다. 하지만 스키점프, 노르딕복합 등은 전문으로 키우는 학교 외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 기록 등에서 세계에 미치지 못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노르딕복합 등의 엘리트를 키우기 어려운 여건이다. 시설이 갖춰진 곳에서 훈련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기본 코스가 해발 3000m다. 여건 자체가 우리와 비교할 것이 아니다. 유럽은 서머스키부터 탄다. 스키 코스도 다양하다. 스노보드, 프리스타일 등 생긴지 오래되지 않은 종목은 메달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스노보드 미래' 최가온(15·세화여중)은 최근 익스트림 스포츠 이벤트 X게임 슈퍼파이프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기록했다. 이채운(17·수리고)도 국제 대회에서 상위 성적을 거듭하고 있다. 박 회장은 "집중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유럽 등 스키 선진국은 재능을 보고 어렸을 때부터 투자해서 키운다. 체계적으로 잘 훈련을 시켜야 한다. '천재'라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되는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50년 외길인생, 꿈도 목표도 '스키 인구 확장'
박 회장은 엘리트 선수 육성 외 스키 인구 확장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일반 '스키어'가 줄고 있다. 일반인들은 스키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운전을 배우 듯 제대로만 배우면 절대 위험한 운동이 아니다. 평생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스키는 양발을 똑같이 사용해서 밸런스를 맞춘다. 전신 균형도 잡는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운동이다. 과거에는 청소년 스키 캠프, 대학에서 스키 학점제 등을 했었다. 많은 사람이 다시 스키를 접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이어 "스키를 타기 위해 리프트로 정상에 올라간다. 높은 데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마음에 겸손해진다. 50년 동안 스키를 탔지만, 평생 스키를 탈 것이다. 스키 인구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고 싶다. '건강 스포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스키인, 스키를 타는 사람 모두가 행복한 게 내 꿈"이라며 웃었다.
평창=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