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영국)=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7일 오전(현지시각), 영국 북런던 엔필드를 뒤덮은 안개를 뚫고 토트넘 구단 훈련센터 '홋스퍼 웨이'를 찾았다. 잘 가꿔진 훈련장들의 잔디를 구경하는 사이 약속 장소인 퍼스트팀 리셉션에 도착했다.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을 하는 이곳에서 '토트넘 레전드'이자 현 앰버서더인 레들리 킹(43)과 마주 앉았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성큼 기자에게 다가온 킹이 꺼낸 첫마디는 "주말에 좋은 결과가 나와 기분이 너무 좋다"였다.
이틀 전 토트넘은 런던 홈에서 맨시티를 1대0으로 눌렀다. 킹은 "우리는 새 경기장에서 아직 맨시티에 골을 허용하지 않았다. 믿을 수 없다. 우리 선수들이 수비를 잘 했다. 홈팬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덕에 맨시티를 어렵게 만들었다"며 몸을 던져 상대 파상공세를 막아낸 선수들의 활약을 칭찬했다.
킹은 이날 결승골을 넣으며 토트넘 구단 최다골(267골) 역사를 쓴 후배 해리 케인(30)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 어린 선수가 아카데미를 거쳐 클럽에 오래 머물며 영웅이 됐다. 높은 수준에서 그렇게 많은 골을 넣은 건 정말 대단하고 특별하다. 케인이 앨런 시어러, 웨인 루니와 같은 환상적인 선수들과 같은 범주에 있다는 건 엄청나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날 경기에서 케인의 '영혼 파트너' 손흥민(31) 역시 긍정적인 시그널을 남겼다. 선발 출전해 교체될 때까지 84분간 팬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할 '광속 드리블'을 수차례 선보였다. 안면 마스크를 벗어 던진 뒤 확실히 '폼'이 살아났다. 킹은 '손흥민이 돌아왔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고민 없이 "그렇다. '쏘니'는 팀을 위해 뛰는 선수다. 잘 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다. 나는 늘 최고의 선수들이 한동안 컨디션이 좋지 않더라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클래스가 있는 선수들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손흥민 역시 약 석달 간의 힘겨운 시기를 딛고 다시 제 궤도에 올라올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킹은 경기장보다 훈련장에서의 손흥민에 더 주목했다. 그는 "쏘니는 잘 웃는다. 하지만 훈련 시간이 되면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쏘니는 미니 게임을 할 때조차 이기고 싶어한다. 경쟁을 즐긴다. 만약 그가 (미니 게임에서)이기지 못하면 잠깐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한 시간, 두 시간 후, 또는 다음날 다시 미소를 지을 것이고, 경기에 들어가면 다시 심각해질 거다. 선수라면 이렇게 집중력과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최고의 선수들은 매 훈련, 매 경기 승패에 신경을 쓴다. 이런 것들이 지금의 쏘니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시선을 맨시티전으로 옮겼다. 킹은 "맨시티전에서 쏘니가 보여준 성과는 컸다. 팀에 큰 플러스 요인이었다. 득점하지 못했더라도 팀을 위해 환상적인 경기를 펼쳤다는 게 중요하다. 쏘니가 팀을 위해 뛰면 우리팀은 승리한다"고 말했다. 킹은 손흥민을 토트넘의 경기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핵심 중의 핵심으로 여겼다.
킹은 토트넘 유스를 거쳐 1999년부터 2012년까지 토트넘에서만 활약한 원클럽맨이다. 토트넘 시절 팀의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지금의 레전드 칭호를 얻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숱한 정상급 스트라이커를 상대해본 킹은 "수비수 입장에서 쏘니처럼 스피드가 엄청난 선수를 상대하는 건 매우, 매우, 매우 어렵다. 빠른 선수들은 대부분 외곽(측면)에 더 오래 머문다. 반면, 쏘니는 안과 밖을 넘나들고, 피치 중앙을 매우 빠르게 통과한다. 쏘니와 같은 플레이스타일을 지닌 선수는 많지 않다. 가레스 베일 정도가 떠오른다. 쏘니는 또 다비드 지놀라처럼 양발로 편안하게 슛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골을 넣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지놀라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토트넘 에이스를 지낸 프랑스 출신 꽃미남 스타다.
손흥민은 2015년 레버쿠젠에서 토트넘으로 이적, 지금까지 컵대회포함 151골(382경기)을 넣었다. EPL에선 97골(252경기)을 넣어 100골 고지까지 단 3골만을 남겨뒀다. 2021~2022시즌 23골을 폭발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 EPL 득점왕을 수상한 손흥민의 행보가 더욱 놀라운 건 어시스트 기록 때문이다. 손흥민은 97골을 넣으면서 동시에 49도움도 적립했다. 3골 1도움 추가시 '100골 50도움' 대기록을 달성한다. 1992년 출범해 31년 역사를 지닌 EPL에서 '100골 50도움' 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18명뿐이다. 킹은 "스트라이커는 일반적으로 골에 집중한다. 그래서 때론 이기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손흥민과 케인은 득점을 하는 것만큼 어시스트를 하는 것도 좋아하는 이타적인 플레이어다. 손흥민이 지금처럼 잘 해준다면 더 많은 골과 어시스트가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적, 생김새, 성격 뭣하나 공통점을 찾기 힘든 손흥민과 케인, 일명 '손케 듀오'는 왜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는 걸까. 킹은 "그들은 서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보완한다. 쏘니는 너무 빠르다. 해리는 때때로 경기 속도를 늦춘 다음 패스를 하는 스타일이다. 해리가 공을 소유했을 때 수비수들은 긴장하는데, 그때 갑자기 패스를 찌르고, 손흥민이 골을 향해 빠르게 달려간다. 둘은 경기장 안팎에서 최고의 '케미(케미스트리)'를 자랑한다. 그들은 이미 기록(EPL 최다 합작 골)을 세웠지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몇 년 후 그들의 선수 커리어가 끝나면 그때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서로를 얼마나 도왔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국내 일부팬 사이에서 케인이 '손흥민의 아내'로 불린다는 말에 '빵 터진' 킹은 "해리의 아내가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은데"라고 조크했다. 케인은 유부남에 세 아이의 아빠다.토트넘은 2022년 여름 프리시즌 투어차 한국을 찾았다. K리그 올스타, 세비야와 친선경기를 치렀다. 투어 기간 중 토트넘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내팬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킹은 토트넘 구단 입장에서도 '특별한 투어'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집처럼 느껴졌다. 공항에서 받은 환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많은 팬에 둘러싸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라며 "무엇보다 그곳 사람들을 보며 쏘니의 삶이 어떤지, 사람들이 쏘니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게 돼 좋았다. 개인적으론 2005년 피스컵 참가로 한국에 갔었다. 그때 우리가 우승했고,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번엔 훨씬 더 크고 더 많은 지원을 받았다. 선수들도 한국을 좋아했다. 훈련 측면에서도 아주 좋은 원정이었다"며 기회가 된다면 또 한국 투어에 나서고 싶다고 했다.
킹에게 한국 투어가 더 특별했던 이유가 있다. 옛 동료인 이영표 전 강원FC 대표이사와의 만남이다. 이영표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토트넘에 몸담았다. 킹과 함께 2008년 리그컵 우승을 합작했다. 킹은 "거기 있는 동안 몇 번 만났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전화번호를 다시 교환했다"며 "이영표는 최고의 선수이자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기에 팀원들이 아꼈다. 내가 왼쪽 센터백이었기 때문에 경기장에서 이영표는 항상 내 옆자리였다. 우린 늘 의사소통을 잘 했다"고 말했다.
토트넘은 킹이 현역으로 몸담은 시절보다 더 높은 위상을 얻었다. 유럽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신축경기장 개관, 조제 무리뉴와 안토니오 콘테 등 명장들의 선임과 같은 일련의 과정을 밟으면서 빅클럽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서 지금의 토트넘은 프로선수라면 누구나 가고 싶은 클럽으로 손꼽힌다. 킹은 토트넘행을 꿈꾸는 한국의 축구 꿈나무들을 향해 "좋은 선수가 되려면 가능한 한 많이 연습하고 노력해야 한다. 때때로 좌절을 겪고 포기하고 싶겠지만, 멈추지 말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계속 믿어야 한다. 계속 믿고, 뛰고, 훈련하라"고 조언했다. 런던(영국)=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