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버햄턴, 런던(영국)=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현지시각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를 취재했다. 4일엔 울버햄턴 홈구장 몰리뉴 스타디움으로 달려가 울버햄턴-리버풀전을 보고, 하루 뒤엔 영국 런던으로 옮겨 토트넘 홋스퍼스타디움에서 열린 토트넘과 맨시티전을 지켜봤다. 유럽파 황희찬(울버햄턴)과 손흥민(토트넘)이 세계적인 강호와 맞붙는 경기를 취재하러 가 느낀 점 중 하나는 '도시와 하나가 된 축구'였다.
울버햄턴으로 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맨유와 크리스탈팰리스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보였다. 울버햄턴-리버풀전과 같은 시각에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두 팀의 경기가 열렸다. 맨유 유니폼을 입은 노년팬은 런던에서 맨체스터까지 장거리 이동 중이었다. '축구의 나라'라는 게 새삼 실감났다.
경기 당일, 울버햄턴과 토트넘은 온통 축구로 채색됐다. 오후 3시에 시작된 울버햄턴-리버풀전을 앞둔 대낮부터 지역 내 펍(술집)에는 울버햄턴 유니폼 차림으로 맥주를 들이키는 팬들로 붐볐다. 팬들은 한껏 커진 목소리와 불콰해진 얼굴로 경기 시간에 맞춰 몰리뉴 스타디움으로 걸어갔다. 경기장을 향한 팬들의 '노랑 행렬'은 장관이었다. 토트넘도 다르지 않았다. 펍 내부와 외부에 옹기종기 모여 신나게 축구 수다를 떨고, '맥주 충전'을 마친 뒤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에겐 이런 모습은 연중 행사가 아닌 '일상'이다.
경기장 앞에는 선수단 팀 버스에 내리는 선수들을 보기 위해 기다리거나, 동행자를 기다리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경기장 앞'은 동네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가족단위로 경기장을 찾아 다른 가족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팬들이 많았다. 손흥민의 등번호 7번 유니폼을 입은 한국 축구팬들은 커뮤니티, SNS 등에서 구한 '동행자'를 만나 함께 스토어와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경기 시작 약 2시간 전이 되자 경기장 인근 도로가 봉쇄됐다. 구름처럼 몰려드는 팬들의 자연스러운 '거리두기'로 사고를 예방하자는 차원이다. 팬들은 '차없는 도로'를 자유롭게 걸어다녔다. 영국은 끔찍한 '힐스보로' 참사를 경험한 뒤 축구장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힐스보로 참사는 1989년 4월 FA컵 준결승이 열린 셰필드의 힐스보로 스타디움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96명이 사망했다. 사고 이후 영국 정부는 축구장 관중석을 좌석 형태로 바꿨다.
토트넘의 경기는 오후 4시30분에 시작해 6시30분쯤 끝났다. 경기 시간은 90분에 불과하지만, 팬들이 한 경기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꼬박 하루'다. 성인 남성팬을 기준으로, 오전에 집을 나와 펍 또는 식당을 찍고 경기를 보고난 후 뒤풀이를 한다. 황금같은 주말의 하루를 꼬박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할애하는 일상은 퍽 자연스럽다. 이날 경기에선 토트넘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해리 케인이 구단 통산 최다골(267골) 기록을 세우며 '강호' 맨시티를 1대0으로 꺾었으니 밤은 더 길어지지 않았을까. 울버햄턴은 리버풀을 3대0으로 꺾었다.
울버햄턴 선수들은 독특하게 '울버햄턴 전설' 빌리 라이트 동상이 서있는 정문으로 '퇴근'했다. 경기가 끝난 뒤 가족이 선수단 라커룸 근처까지 찾을 수 있는 구조여서, 마테우스 쿠냐, 루벤 네베스 등 일부 선수들은 어린 자녀를 품에 안고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선수들에겐 정문 앞에 기다리는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셀카를 찍는 것이 매치데이의 마지막 일정이다. 수 천만원, 많게는 수 억원의 주급을 받는 선수지만, 이 순간만큼은 '친근한 동네 축구선수'가 된다. 시민들과 하나가 된다. 런던·울버햄턴(영국)=윤진만 기자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