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9년 전 칸의 샛별로 떠오르며 전 세계 씨네필의 시선을 사로잡은 정주리(43) 감독. 두 번째 연출작을 꺼내기까지 쉽지 않았던 과정을 고백했다.
전작 '도희야'(14) 이후 9년 만에 신작 영화 '다음 소희'(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작)로 컴백한 정주리 감독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다음 소희'의 연출 과정부터 배우 배두나, 김시은과 호흡을 맞춘 소회를 전했다.
'다음 소희'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여고생이 겪게 되는 사건과 이에 의문을 품는 여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지난 2017년 이동 통신사 콜센터로 현장실습 갔다가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된 19세 소녀 고(故) 홍수연 양의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화했다. 정주리 감독 특유의 섬세하면서 직설적인, 또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다음 소희'는 한국 영화 최초 지난해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비평가주간 폐막작에 선정되며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씨네필을 사로잡았다.
정주리 감독은 '도희야' 이후 '다음 소희'까지 차기작을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부터 전했다. 그는 "사실 '도희야' 개봉이 2014년이었는데 그 작품을 끝내고 여러 가지 일을 마치니까 2016년이었다. 곧바로 차기작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제작에 들어가려 했지만 안됐다. 그 작품을 완전하게 포기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리더라.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완전히 단념하고 나서는 돌아보니 나는 영화계에서 많이 잊힌 사람이 됐다. 그때는 암담하더라.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런 상황에 이 영화 제안을 받게 됐다. 내겐 기사회생이었다. 준비했던 작품이 엎어지고 난 뒤 연출을 포기하기보다 이렇게 차기작을 못하게 되는구나 싶었다. 더이상 나에게 기회가 없을 수도 있고 '다른 선배들도 이렇게 포기를 했구나' 많이 생각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어 "물론 '도희야' 이후 연출 의뢰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그중에는 기존에 시나리오가 있고 내가 각색해 연출하는 방식의 연출 의뢰도 있었다. 욕심이 나는 프로젝트도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온전하게 다 잘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내가 직접 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욕심이라면 욕심이 컸던 것 같다. 온전하게 나의 모든 것을 다 녹아내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던 것 같다"고 소신 있는 연출론을 드러냈다.
이러한 정주리 감독이 '다음 소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결정적 한 방은 실제 사건이 안겨준 충격이었다. 정주리 감독은 "'다음 소희'의 실화를 인식하게 된 것은 지난 2020년 말이었다. 제작사로부터 실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이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서 나에게 연출 제안이 왔다. 그때부터 찾아보니 2017년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사건의 기사를 찾아보고 콜센터 문제에 충격을 받았다가 자세히 들여보니 현장실습이라는 교육제도도 문제가 크더라. 내 관심이 그쪽으로 더 쏠리면서 '다음 소희'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기회가 되면 꼭 말하고 싶었다"고 차기작으로 '다음 소희'를 선택한 의미를 전했다.
실화에 대한 힘도 컸지만 '다음 소희'의 중심을 이끈 주인공 김시은과 배두나의 활약도 컸다. 특히 정주리 감독은 '도희야' 이후 차기작까지 배두나와 호흡을 맞추면서 남다른 케미를 발산한 것. 그는 "배두나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인물, 구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배두나가 있기에 애초에 시도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배두나는 내 작품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내 마음에 왔다 간 것처럼 이해해줬다. 배두나가 전적으로 지지를 해주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도희야'는 모르겠지만 '다음 소희'는 확실하게 배두나에게 영감을 받았다. 배두나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인물이다"고 무한 신뢰를 드러냈다.
신예 김시은에 대한 애정도 상당했다. 정주리 감독은 "김시은은 전혀 몰랐던 배우였다. 그런데 김시은을 직접 만나고 대화를 이어가는데 내게 '소희가 세상에 꼭 나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도희야'를 만들기 전 배두나에게 출연 제안을 할 때였다. 그 당시 배두나가 내게 '이 영화는 세상에 꼭 나와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 여기에 저예산 영화니까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힘을 보태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김시은의 말에서 기시감이 들었다. 보통은 캐스팅 할 때 '이 역할을 잘 할 수 있다' '내가 바로 그 소희다'라는 생각을 보통 하는데 김시은은 이야기 자체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더라. 비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다음 소희'는 김시은, 배두나가 출연하고 '도희야'의 정주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8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