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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 좋을 때 꼭 다친다더니… 황희찬은 몸보다 맘이 아프다[울버햄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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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버햄턴=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원망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내 몸이다. 감수해야 한다."

'자주 다치는 근육이 원망스럽지 않냐'는 물음에 대한 '황소' 황희찬(27·울버햄턴).의 답이다. 황희찬은 4일(현지시각), 영국 울버햄턴 몰리뉴 스타디움에서 열린 리버풀과 2022~2023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2라운드에서 전반 39분 오른쪽 햄스트링을 다쳐 곧바로 아다마 트라오레와 교체됐다. 부상 직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손바닥으로 땅을 치고,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행동 하나하나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자연스레 장기 부상에 대한 우려가 생겼다.

경기 후 믹스드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마주한 황희찬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울 것만 같았다. 웬걸. 기우였다. 황희찬은 담담한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 서서 담담하게 부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먼저 "부상을 당한 순간 (부상 부위가)아프다는 느낌보단 그냥 너무나도 아쉽다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몸보다 '맘'(마음)이 아팠다는 거다. 그는 "오늘 결과가 좋았다. 경기력도 전반은 완벽에 가까웠다. 저 스스로도 좋은 모습 보여주고 있었다. 팬분들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전반전을 끝마치기 전에 부상을 당했다는 게 아쉽다"고 했다.

황희찬은 전반 5분 파블로 사라비아의 수비 뒷공간 공략 패스를 건네받아 영리한 페이크 동작으로 조엘 마티프를 따돌리고 컷백을 시도, 뒤따라오던 마티프의 자책골을 이끌어냈다. 황희찬이 빚어낸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한 울버햄턴은 전반 12분 문전 혼전 상황에서 크레이그 도슨이 넣은 골로 전반을 2-0 앞선 채 마쳤다. 후반 리버풀의 파상공세를 견뎌내는 한편, 후반 26분 루벤 네베스의 쐐기골이 터지며 3대0 쾌승을 따냈다. 황희찬은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양 진영을 넘나드는 활발한 움직임과 연계 플레이로 공수에 걸쳐 큰 영향력을 끼쳤다. 유독 몸이 가벼워보였던 황희찬은 넬손 세메도의 패스를 받기 위해 전력질주하던 중 부상을 입었다.

이번 햄스트링 부상이 아쉬웠던 이유는 또 있다. 황희찬은 2021년 12월 브라이턴전, 2022년 3월 에버턴전에서 이번과 같은 햄스트링을 다쳤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말썽을 부린 부위도 햄스트링이었다. 스프린트(전력질주)를 자주 하는 유형인 황희찬은 최근 1년여 사이에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부상은 소속팀 주전 경쟁의 어려움, 월드컵 초반 2경기 결장과 같은 악재를 선물했다. 그래서 눈치없이 계속 부상을 안기는 근육이 원망스럽지 않느냐가 물은 것이다.

황희찬은 "월드컵에 나서고 싶어 (부상한 햄스트링 부위에)할 수 있는 모든 걸 너무 많했다. 햄스트링 부위에 감각이 없어질 정도였다"며 "월드컵 이후 완전히 부상 부위가 낫지 않은 상황에서 마사지를 받아가며 경기를 뛰었다. 그럼에도 늘 '느낌이 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부상을)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그동안 안 다치고 뛴 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지도 모르겠다.

햄스트링은 부상 정도에 따라 복귀 날짜가 천차만별이다. 심한 경우 복귀까지 몇 달이 걸리기도 하지만, 가벼운 햄스트링 부상은 2~3주면 복귀한다. 황희찬은 불행 중 다행으로 후반 도중 점퍼를 입고 벤치로 복귀해 팀이 3대0 깜짝 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지켜봤다. 경기 후에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동료들과 축하를 나누고, 팬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황희찬은 "홈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무실점 3대0 스코어로 이겼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경기 막바지에는 팬분들과 즐기는 모습도 나왔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계속 나와야 하는 장면"이라고 반색했다.

훌렌 로페테기 울버햄턴 감독은 11월 초 지휘봉을 잡아 월드컵이 끝난 이후 황희찬을 적극적으로 중용하고 있다. 황희찬은 리버풀전까지 리그 6경기 연속 선발 출전했다. 브루노 라즈 전 감독 체제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입지 대반전이다. 스페인 출신 로페테기 감독은 부상을 당한 이후 벤치 쪽으로 걸어오는 황희찬을 꼭 안아줬다. 경기 후에는 두 번이나 안아줬다. 아끼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황희찬은 "선수가 자기자신뿐 아니라 감독 등 코칭스태프를 위해 뛰는 마음도 중요하다"며 "감독님에겐 당연히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 홈팬들로부터 위로의 기립박수를 받은 황희찬은 경기 후 팬들의 사랑을 고스란히 돌려줬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직접 경기장 앞에서 족히 100명은 넘는 국내외 축구팬들에게 '특급 팬서비스'를 했다. 퇴근길 개인차량 안에서 약 30분간 팬들의 사인 및 사진 촬영 요청에 일일이 응했다. 팬들이 차량 옆에 줄지어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지칠 법도 한데 마지막 한 명의 팬까지 놓치지 않았다. 황희찬의 갑작스런 부상 소식에 자칫 황희찬을 못 보면 어쩌나 걱정했던 한국팬들은 "기다린 보람이 있다"며 만족스러워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황희찬은 5일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할 예정이다. 그는 "내일 검사를 받아봐야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빠르고, 더 강하게 복귀하겠다"고 약속했다. 울버햄턴=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