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대다수 시청자가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으로 드라마를 볼 때 '오프닝 건너뛰기' 버튼을 누른다. 작품의 타이틀 시퀀스를 뛰어넘고 바로 극을 시청하기 위해서다. 그런 가운데 몇몇 인기 드라마에 한해서는 '오프닝 건너뛰기'를 '건너뛰는' 분위기다. 최근 인기 드라마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가 만화로 제작돼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N '일타 스캔들'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수학 일타 강사 최치열(정경호) 뒤로 각종 수학 공식이 뜨면, 반찬가게 사장인 남행선(전도연)이 각종 채소를 채 썰어 도시락을 완성하는 장면으로 그려진다. 또 그 도시락을 최치열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이어지면서 '일타 스캔들' 기본적인 줄거리가 만화로 표현됐다.
최근 첫 방송을 시작한 MBC '꼭두의 계절' 오프닝도 애니메이션으로 이뤄졌다. 사신 꼭두(김정현)가 신비한 능력을 가진 왕진 의사 한계절(임수향)을 만나는 내용을 짧은 분량의 만화로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것이다. 오프닝에서 검은색 옷을 입은 꼭두(김정현)와, 그 꼭두를 살리기 위해 응급 처치하는 한계절(임수향)의 모습이 캐릭터로 사랑스럽게 나타나 있다.
오프닝에서 만화로 줄거리가 표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의 상징적인 그림이 담긴 경우도 많다. 현재 방영 중인 SBS '법쩐'에는 수많은 빌딩과 돈을 저울로 재는 그림으로 돈장사꾼 주인공 은용(이선균)이 드러나 있다. KBS2 '두뇌공조'도 마찬가지다. 희귀 뇌질환에 얽힌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인 만큼, 폴리스 라인이 설치된 배경에 뇌 그림이 등장한다.
지난해 방송된 인기 드라마들도 애니메이션 타이틀 시퀀스 영상이 화제된 바 있다. tvN '작은 아씨들'과 SBS '천원짜리 변호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작은 아씨들' 오프닝에서는 작품 핵심 스토리를 관통하는 보라색 난초가 눈에 띄게 나온다. 당시 드라마가 화면, 구도, 색감, 연출 등으로 호평을 얻은 가운데, 오프닝 영상도 작품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평가가 상당했다.
'천원짜리 변호사' 오프닝은 천지훈(남궁민), 백마리(김지은) 등 주요 인물들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 드라마보다 TV 애니메이션 오프닝 같다는 반응이었다. 유년시절 향수를 자극했다며 이 오프닝 관련 게시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다. 당시 트위터에서 해당 게시물이 14600 리트윗을 돌파한 바다.
사극도 오프닝을 만화로 선택하고 있다. 최근 재방송 편성된 KBS2 '연모', 시즌2로 돌아온 tvN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2'가 그러하다. 한국 고유의 미가 드러나는 의상, 건축물 등이 그림으로 표현돼 반가움을 자아낸다. 특히 지난해 인기작이었던 퓨전 사극 tvN '슈룹'도 오프닝에서 고풍스러운 장식장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이 안에 그려진 오브제들이 화령(김혜수)을 표현한 우산, 대비(김해숙)를 표현한 간수 등이었다. 여기에 의성군(강찬희)의 출생 비밀까지 그림에 내포,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그간 드라마 오프닝 영상은 출연하는 배우들을 소개하고, 주요 스태프를 기재한 크레딧으로 활용해왔다. 각 인물의 배우들을 타이트하게 잡은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오프닝 영상이 보편적이었던 것. 최근에는 타이틀 시퀀스에 배우들이 직접적으로 출연하기보다는, 작품의 주요 줄거리를 그리거나 숨겨진 의미 등 장치를 넣고 있다. 무엇보다 코미디 요소가 가미되는 작품이나 트렌디한 주제의 드라마는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를 캐주얼한 만화로 활용, 색다른 매력을 발산 중이다. 이것이 최근 오프닝 영상이 드라마 본편만큼 놓칠 수 없는 재미로 통하는 이유다.
'천원짜리 변호사' 오프닝 영상을 기획한 김현우 조감독은 "드라마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오프닝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는 항상 조연출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라며 "리얼리티와 고증보다는 만화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우리 드라마가 '무거운 법정물이다'라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만화적이고 오락적인 유쾌한 드라마'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예 오프닝을 만화로 만들면 어떨까? 그럼 아무도 우리 드라마가 무거운 법정 드라마라고는 생각 안 할거야'라고 생각했다"라고 기획 배경을 말했다.
해당 오프닝 영상을 작화한 스튜디오 애니멀 조경훈 대표는 "만화적으로 변형된 캐릭터지만 실사 캐릭터의 뉘앙스를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며 "드라마의 시나리오와 캐릭터의 구성 자체가 만화적이고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아 애니메이션 오프닝의 기획과 제작 과정 자체가 무척 즐거웠다"고 덧붙였다.
정빛 기자 rightligh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