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일말의 기대감이 산산이 부서졌다. 한국 축구의 '외교력 복원'은 '일장춘몽'에 불과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61)이 1일 아시아 몫의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 위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선거에 나선 7명 가운데 5위 안에만 들면 당선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4년 전에는 몽골, 이번에는 필리핀에 밀렸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더 참담하다. 각 국의 수장들은 7명의 후보마다 복수로 'O', 'X'를 표기한다. 정 회장은 AFC 46개 회원국의 비밀 투표 결과, 유효표 45표 중 19표를 받는데 그쳤다. 정 회장에게 'O'표를 행사한 국가는 19개국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7명 중 6위다. 최하위인 두자오카이(18표·중국)보다 한 표 많다. 중국의 경우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제 무대에 발길을 끊은 것이 표심으로 나타났다.
반면 셰이크 아마드 칼리파 알 타니(카타르·40표), 다시마 고조(일본·39표), 야세르 알미세할(사우디아라비아·35표), 마리아노 V. 아라네타 주니어(필리핀·34표), 다툭 하지 하미딘 빈 하지 모흐드 아민(말레이시아·30표)은 모두 과반을 넘어 1차 투표에서 당선이 확정됐다.
정 회장은 지난해 아시안컵 유치 실패를 되돌리기 위해 FIFA의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핵심적인 기구인 평의회에 도전장을 냈다. 국제 축구 무대에서 끊어졌던 교량을 다시 잇겠다는 포부도 담겼다.
그러나 '선거의 잔혹사'는 여지없이 계속됐다. 그는 2015년 FIFA 집행위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2년 뒤 새롭게 도입된 FIFA 평의회 위원에 당선돼 2년 가까이 활동했지만 2019년 재선에 실패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부회장직에서도 낙마했다. 올해 다시 한번 '눈물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잃어버린 4년'이다. 아시아 최초 월드컵 4강 신화,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12년 만의 월드컵 16강은 '우리만의 환희'일 뿐이다. 한국 축구는 아시아 주류에는 없는 '외딴섬'일 뿐이다.
이제 누구를 탓하기에도 부끄럽다. '중동의 카르텔'이란 말도 지겹다. 이날 열린 제33차 AFC 총회에선 2027년 아시안컵 개최지도 확정됐다. 예상대로 사우디가 유치에 성공했다. 아시안컵은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사우디로 이어지며 3회 연속 중동에서 열리게 됐다.
중동이 AFC의 패권을 거머쥔 지 오래다. 다시마 고조 일본축구협회장은 FIFA 집행위원에 이어 평의회 위원으로 연임하는 것처럼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지혜롭게 실속을 챙기고 있다. 반면 정 회장은 '딴세상'에 있다.
2013년 대한축구협회장에 오른 그는 2021년 3선에 성공했다. 만 10년을 AFC 무대에 존재했지만 좀처럼 융화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고자세 외교'는 여전하고, 신뢰도 또한 바닥이다. '스킨십'을 하더라도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한 축구인은 "안타깝게도 정 회장은 AFC 회원국들사이에서 인기가 없는 편이다. 평소에는 교류가 없다가 선거 때만 표를 '구걸'한다는 인식이 짙게 깔려있다"고 귀띔했다.
이렇다보니 한국 축구 외교는 중동에 외면당하고, '이웃나라'인 일본에 밀린다. '힘'이 있는 쪽으로 밀착하는 아세안과 중앙아시아에서도 지지세가 떨어진다.
2년 후 정 회장의 축구협회장 임기가 끝난다. 축구는 국제 스포츠다. 정 회장 체제에선 '외교력 복원'이 쉽지 않아 보인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