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김승기 감독을 만나 '작은' 이정현,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결과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컵대회지만, 그래도 각 팀들은 정규리그 개막을 앞두고 최종 리허설을 치르는 무대라 긴장을 한다. 특히 지난 시즌 통합우승, 컵대회 우승까지 모두 차지한 서울 SK를 만나는 팀이라면 주눅이 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고양 오리온의 옷을 벗어 던지고 새롭게 태어난 캐롯은 SK가 뭐가 무섭냐는 듯 100대64로 박살을 냈다. SK가 최준용 등 주축 선수들이 빠졌다고는 해도 웬만한 선수들이 다 있었는데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캐롯에 밀렸다.
캐롯을 이끈 선수는 2년차 가드 이정현. 21득점 9어시스트로 양팀 통틀어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속공, 돌파 등 원래 공격력은 좋았고 경기 운영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시즌 신인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오리온에 입단한 이정현은 루키 시즌 착실하게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일생일대 기회를 만나게 된다.
팀이 재창단을 하며 김승기 감독이 새롭게 부임하게 됐다. 안양 KGC를 2차례 우승시킨 명장. 불같은 성격이지만 김 감독의 캐릭터는 확실하다. 선수의 특성을 살려, 될 것 같다 하는 선수에게는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 전성현, 변준형, 문성곤 등이 김 감독의 손을 거쳐 스타로 발돋움한 좋은 예다.
지난 시즌 이정현은 신인이기도 했지만, 이대성이라는 높은 벽이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김 감독은 자신과 스타일이 상극인 이대성과 함께 할 마음이 없었다. 이대성의 대구 한국가스공사행. 이는 김 감독이 이정현을 팀 앞선의 새로운 기둥으로 만들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물론, 이정현이라는 선수가 좋은 재능을 갖고 있다는 확신을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수 입장에서 감독이 지나치게 관심을 쏟고, 혼내기도 하면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프로 선수 입장에서, 감독이 자신을 그렇게 신경써준다는 것 자체는 엄청난 행운이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선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행복으로 받아들이며 많은 기회를 얻고,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려 연봉을 올리는 게 현명한 일이다.
앞으로 이정현을 변준형과 비교를 해보면 재미있을 듯. 김 감독이 엄청난 '밀당'을 통해 성장시킨 변준형은 'KBL의 어빙'이라는 별명답게 스텝백 슛이나 화려한 돌파 스텝 등이 장기다. 팬들이 보는 재미가 있다. 반대로 이정현은 농구가 깔끔하다. 군더더기 없이 속공, 2대2 플레이에 능하다. 화려함은 덜해도, 감독이 좋아할 스타일인 건 분명하다.
KBL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베테랑 포워드 이정현(서울 삼성)이 아직 건재하다. 그래서 캐롯 이정현은 시작부터 자신의 의도와 상관 없이 '작은 이정현'으로 불렸다. 가드 조련에는 특히 일가견이 있는 김 감독을 만난 이정현. 과연 캐롯을 넘어 KBL을 대표하는 가드로 성장할 수 있을까. 그리고 '큰 이정현'의 아성을 넘는 선수가 될 수 있을까.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