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한동희(23)가 롯데 자이언츠 선발 라인업에서 사라졌다. 가을야구 경쟁이 막바지로 치닫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한동희는 지난 9월 21일 한화 이글스전까진 평소처럼 선발출전했다. 하지만 이튿날인 22일 LG 트윈스전부터 벤치로 밀렸다. 김민수(24)가 한동희 대신 주전 3루수로 기용됐다.
총 6경기 중 한동희가 선발로 나선 경기는 24일 키움 히어로즈전 1경기 뿐이다. 나머지 경기는 모두 벤치에 머물렀다. 대타로 나와 적시타를 때리거나 볼넷을 얻은 경기도 있다. 하지만 3~4타석에 한번 임팩트를 남기면 되는 주전과 달리 1~2타석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래리 서튼 롯데 감독에게 한동희의 벤치행에 대해 직접 질문을 던졌다. 그간 "컨디션 문제"라고만 답해왔던 그는 2일에는 "컨디션 문제, 수비 불안, 타격 저조, 3가지 모두 다"라며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타격 사이클이 떨어진 상태가 몇주 이상 지속되고 있다. 주전에서 빠진 상태로 조정하고 있다. 피지컬 컨디션도 썩 좋지 않다. 수비에서도 좀더 나아진 모습이 필요하다."
서튼 감독은 "야구의 시즌은 144경기다. 거의 매일 경기가 열린다. 그래서 '꾸준함'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멘털도 강해야하고 근성도 있어야한다"면서 "한동희는 보다 꾸준한 모습을 보여줘야한다"고 덧붙였다.
롯데가 단독 2위에 올랐던 4월은 한동희에게도 황금기였다. 한달간 홈런 7개 포함 타율 4할2푼7리(89타수 38안타)를 기록했다. OPS(출루율+장타율)가 무려 1.249에 달했다. 이대호의 은퇴시즌을 맞이한 팬들은 마침내 각성한 '후계자'에게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브룩스 레일리(2017년 9월) 이후 무려 4년 7개월만에 롯데에 월간 MVP의 영광을 안겼다.
부상, 그리고 거짓말 같은 추락이 이어졌다. 올해 한동희에게서 4월을 빼면 타율 2할7푼9리 6홈런 41타점, OPS 0.706의 평범한 타자가 된다. 7월 한달간 타율 3할4푼6리로 부활을 알리는 듯 했지만, 8~9월 다시 2할대로 주저앉았다.
무엇보다 장타가 실종됐다. 4월 한달간 홈런 7개를 때렸는데, 나머지 5개월 동안 6개에 그쳤다. 2년 연속 17홈런을 때리고 올해 각성을 꿈꿨던 한동희다. 시즌이 끝나가는 지금 13홈런이란 성적표가 성에 찰리 없다.
득점권 타율과 타점도 엉망이다. 선배 이대호는 올해 만루홈런 3개를 쏘아올리며 마지막까지 클래스를 입증하고 있다. 후반기 득점권 타율이 4할1푼(115타수 37안타)에 달한다. 반면 한동희는 2할5푼5리(94타수 27안타)다.
수비 불안감도 여전하다. 한동희의 포지션은 3루수다. 하지만 송구에 약점이 있다. 어깨는 차고 넘치지만, 정확도 문제가 심각하다. 실책 뿐 아니라 서튼 감독이 즐겨쓰는 시프트를 통해 바뀐 위치에 적응하는 능력도 크게 떨어진다.
올해 롯데의 FIP(수비 무관 투구 지표, 스탯티즈 기준)는 3.58로 KBO리그 10개 구단 중 2위(1위 KT 위즈)다. 반면 평균자책점은 4.44로 8위에 불과하다.
FIP 1위팀인 KT는 FIP와 평균자책점이 3.55, 3.51로 거의 차이가 없다. SSG 랜더스(4.22/3.84) LG 트윈스(3.76/3.30) 키움 히어로즈(4.01 / 3.83)처럼 대체로 FIP가 더 높다.
반대로 평균자책점이 더 높은 팀은 롯데,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 뿐이다. 하지만 한화조차 FIP(4.50)와 평균자책점(4.87)의 차이가 크지 않다. FIP보다 평균자책점이 1점 가까이 높은 팀은 오직 롯데 뿐이다. 한동희로 대표되는 롯데 내야의 불안정성이 드러난다.
가을야구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9월 하순 서튼 감독은 한동희 대신 김민수를 선발 3루수로 기용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렸다. 후반기 김민수의 공격 생산력은 타율 2할7푼1리, OPS 0.681로 한동희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수비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
그 결과는 3승3패. 특히 9월 23일 LG전(0대1패) 29일 KIA전(4대5패)처럼 한방이 아쉬웠던 경기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사령탑이 한동희를 바라보는 눈이 '대체불가'에서 '교체 가능'으로 바뀌었다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내년에는 이대호가 없다. 한동희의 어깨는 한층 더 무거워진다. 롯데 팬들이 사랑하는 '한동희어로'는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까.
부산=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