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닷컴 이지현 가자] 음악 평론가 임진모가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아들에 대해 언급했다.
14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는 대한민국 음악 평론의 핵심 인물인 음악평론가 임진모가 출연했다.
임진모는 1995년부터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고정게스트로 DJ 배철수와는 매주 함께하며 현재는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가 됐다. "고정게스트의 역사다"라는 배철수는 "다른 평론가와 달리 독특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랑 아무리 친해도 방송에 도움이 안 되면 방송을 같이 못했을거다. 임진모 씨가 역할을 훌륭하게 해줬기 때문에 오랜 세월 함께 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로 훌륭한 평론가다"라는 배철수는 "음악과 이 음악이 사회에 미치는 현상을 깊이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구에서 임진모가 제일 뛰어나다"라고 극찬했다.
또한 가수 김현철도 "확고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라며 "젊은 친구들과 같이 글을 쓰고 평론을 하시는게 소통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다"라고 평가했다.
임진모는 '음악 평론가'라는 꿈을 가지게 된 시점에 대해 "중3 겨울방학 고등학교 입학 직전이다"라고 밝혔다. "어머니가 '밥 먹고 들어 밥 먹고'라는 말을 항상 하셨다. 진짜 밥을 한 끼도 안 먹고 음악을 들은 적이 있다. 밥먹는 것보다 음악이 더 좋았다 완전 미쳐서 산 거다. 부모님이 음악을 좋아하셨다. 탱고, 지르박을 했다. 어렸을 때 '멋있다' 생각했다"고 부모님의 영향임을 덧붙였다.
임진모의 일상도 공개됐다. 현재 집에 혼자 있는 임진모는 몸이 불편한 장인, 장모님 때문에 아내와 막내딸은 처가에, 큰 딸은 회사 근처에서 자취하는 근황을 밝혔다. 하지만 주방과 글을 쓰는 공간 등 깨끗한 집안에 자부심을 가졌다. 임진모는 자신이 가진 음반들을 보여주며 "LP 1만 2천장 정도 됐다. 지인에게 1만 9천 장 정도 맡겼는데, 2018년 폭염 때 누전이 생겨서 다 타버렸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안겼다.
임진모는 "음악 전문가가 되고 싶어서 신문사나 방송국에 취업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라며, 신문사에 입사해 '롤링스톤'을 구독하고 외국책을 보면서 공부했다고. 또한 임진모는 임백천과의 대화에서 "서태지를 평론하면서 존재감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서태지의 모든 앨범을 평론했다"는 임진모는 "1시간 인터뷰했는데, 방송에 나간건 '잘못하면 서태지도 끝없이 추락합니다'였다. 서태지 팬들에게 욕을 엄청 먹었다"라고 에피소드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임진모는 '전업평론가'로서의 삶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40대 중반 말부터 일이 좀 풀리기 시작했다"는 임진모는 "기자 사표를 내고 전문 평론가가 되기로 했다. 그때 운전해준 기자 동료가 있는데, 그 동료가 '진모 네가 너무 젊어서 사정을 모르고 그러는데 잘못하면 패가망신한다'라고 한 말을 잊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제가 젊었다. 저만 생각했다. 아내와 가족에게 그렇게 힘들 것이라고는 깨닫지 못했다. 돈 못 벌어서 집안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어머니 혼자 사는 좁은 집에 사람 세 명이 더 들어갔다. 그날도 제가 평론 썼다"라며 "딸이 '아빠 오늘도 일해?'라고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진짜 패가망신하겠다 잘못하면, 처음으로 음악 평론하는거 후회했다"고 털어 놓았다. "지금의 아파트 올때까지 8번 이사했다. 죽은 아들이 금호동 깨끗한 방으로 이사왔을 때 뒹굴면서 '와 정말 좋다'했던 그 장면 잊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1년 전, 32살에 떠난 아들을 떠올리며 "다 나 때문에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아이들 사춘기때 용돈을 많이 못 준게 가장 미안하다. 아들 잃고 나서 더 그렇다. 나 좋다고 평론을 했는데 결국 가족들에게 나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게 늘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임진모는 첫째 딸과 과거 백판 사기 위해 방문했던 추억의 거리를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임진모는 "딸과는 문화적인 연결고리다. 비틀즈 음악을 사실 딸에게 거의 강요했다"라며 친구같은 아버지임을 밝혔다. 임진모의 딸 역시 "친구들이 아버지 직접 자체로도 신기해하고 아빠랑 편하게 대화하는 걸 신기해 했다"면서 "아빠와 술친구다"고 이야기해 눈길을 끌었다. 임진모의 딸 답게 "수능 답안지 뒤에 비틀즈 노래 20곡 적고 나왔다", "남자친구를 소개하려면 비틀즈 멤버 이름을 외우고 와야했다"는 에피소드를 덧붙여 웃음을 안겼다.
임진모의 딸은 "아빠랑 보냈던 시간이 많았다. 항상 주말에 만화 영화 보면서 라면도 끓여 먹고 아빠가 음악도 틀어준 기억이 있다"면서 "풍족하진 않았지만, 금전적인 것과는 별개로 아버지를 그때나 지금이나 존경하고 멋지다고 생각한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임진모는 "우리 아들 딸이 응원군이다"라며 삼남매의 든든한 응원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임진모와 딸은 자연스럽게 일년 전 세상을 떠난 아들, 큰오빠를 떠올렸다. "다음주면 일 년인데, 쉽게 극복이 안된다"는 임진모는 "아들딸의 개념보다는 막역한 사이 친구다"라고. 임진모의 딸은 "오빠 생각으로 힘들면 이제는 저한테 기댔으면 좋겠다"라며 마음을 표현했다. 임진모는 "어차피 인생도 슬픔과 외로움 아닌가 생각하고 지내기로 했다. 이젠 괜찮다"라고 다독였다.
임진모는 "아들이 군대 갔다와서 대학 3학년 때 병원에 다녀왔다. '아빠 나 뇌조양이래'라고 말을 했다"면서 "마지막 수술을 넘지 못했다. 수술 경과가 안 좋아서 신장 기능이 점점 줄어들고 모든 기능이 떨어지면서 서서히 지켜봐야 했다. 이틀 가까이 중환자실에서 그 후로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8월 6일 새벽 1시에 5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이야기했다.
"곳곳에 아들의 흔적이 있다"는 임진모는 아들의 병세가 좋아졌을 당시 대학 졸업식 사진을 공개했다. "아들이 쓰던거 하나도 안버리고 다 놔뒀다. 아들이 좋아했던 신발도 지금도 신고 다닌다"는 임진모는 "제가 계속 아들을 설득했다. 내 매니지먼트를 해달라고 해서 실제로 하게 됐다. 5개월 동안같이 다니면서 꿈에 부풀었다. 둘 다. 세상 떠난 아들이 가장 큰 팬이었다. 건강하게 살아 있었다면 내 매니저로 함께 했을거다"라고 회상해 뭉클함을 더했다.
이어 "사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임진모는 "아직도 사람들한테 '자식 간수도 못한 사람이 방송 활동하고 공적활동해'라는 말이 저는 들리는 것 같다. 아들도 지키지 못한 아버지가"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제 인생에서 마이웨이가 정해지지 않은 시점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선을 다해서 아들의 삶을 살아야겠다 그런 마음도 있다"고 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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