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토니 리긴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미국 대표팀 단장은 19일(이하 한국시각)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라웃이 WBC 미국 대표팀 주장으로 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떠오르는 생각은 두 가지다. 우선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 선수이자 MVP를 세 차례나 거머쥔 슈퍼스타가 그동안 외면했던 WBC에 참가하기로 했다는 점이 의아하다. 그렇지만 내년 3월 열리는 WBC에 출전할 선수단을 구성하기도 전에 주장 먼저 뽑은 미국의 발빠른 행보는 신선하다.
트라웃은 사실 2017년 WBC에 출전하려고 했다. 그런데 밝히지 않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에 생애 첫 WBC 출전을 결심하면서 주장으로 뛰겠다고 한 건 그가 미국을 대표하고자 하는 마음이 '진정'이라고 읽히는 대목이다.
리긴스 단장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LA 에인절스 단장으로 일했다. 트라웃의 입단과 신인 시절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으로 이번에 WBC 대표팀 단장을 맡으면서 트라웃을 주장으로 뽑겠다고 이미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리긴스 단장은 "난 선수 트라웃과 인간 트라웃을 모두 잘 안다. 그가 미국을 어떻게 대표할 것이지 잘 그려지기 때문에 그에게 주장을 맡기게 됐다"면서 "그는 동료 선수들도 잘 안다. (선수 선발 관련해)그와 몇 차례 좋은 얘기를 나눴다. 전쟁 참호에 같이 있을 때 트라웃보다 좋은 사람은 없다"고 설명했다.
트라웃이 대표팀 선발에 대해 의견도 개진할 정도이니, 리긴스 단장의 신뢰와 친분을 짐작할 수 있다. 트라웃은 실력, 몸값, 인기에서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다. 이번 WBC가 6년 만에 열리는 만큼 디펜딩 챔피언 미국의 힘을 다시 과시할 선봉에 메이저리그의 '상징적 인물', 즉 트라웃에게 주장을 맡긴 건 의미가 크다.
트라웃이 WBC 미국 대표팀 주장에 선임됐다는 소식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우리 대표팀에 시사하는 바도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WBC 대표팀 감독은 물론 선수단 구성에 관한 원칙조차 세우지 않은 상황이다. 감독부터 정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조정해야 하는 과정이 복잡해 이조차도 쉽지 않다.
KBO는 우선 후반기 중 대표팀 예비 자원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어차피 시즌 후 대표팀을 구성해야 하는데 해당 선수들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WBC는 내년 3월 열린다. 대표팀에 발탁될 선수라면 2월 소속팀 전지훈련을 소화하다 대표팀 소집 이후 보름 정도 손발을 맞추고 대회에 들어가는 등의 일정을 후반기부터는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WBC 대표팀 선수 차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구단간 안배다. 차출되는 선수가 몇 명이냐는 구단들에는 민감한 사안이다. 병역 면제와 같은 직접적인 혜택은 없지만, 대표팀 경험을 쌓게 해주고 싶은 선수가 있을 것이고, 부상을 걱정해야 하는 선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리더의 선임이다. 트라웃과 같은 선수가 대표팀 주장이 돼야 한다. 한국은 2013년과 2017년 WBC에서 참패했다. 2015년 10개 구단으로 확장해 흥행 정점을 찍던 KBO리그도 WBC 실패 후 코로나 사태가 겹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번 WBC는 한국 야구의 재도약 기회로 여겨진다. 젊은 선수들이 대거 등장해 세대 교체도 전폭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선수들을 하나로 묶고 파이팅을 돋울 주장에는 실력, 리더십, 몸값에서 KBO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앉아야 한다. 트라웃같은 선수 말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