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서 임상교수로 일할 때의 이야기이다. 당시 주니어 스태프로 일을 하다 보니 응급실로 오는 슬관절(무릎) 환자들에 대한 상태와 정보를 전부 다 보고받고 있었다.
무릎 주위의 골절, 감염성 질환, 인대 파열 등 많은 환자들을 보았는데, 그 중 유독 기억에 남는 환자분이 있다.
늦여름 정도였을까. 한밤 중에 정형외과 레지던트 1년차로부터 연락이 왔다. 무릎에 감염성 관절염이 의심되는 환자였다. 나이는 89세. 기저질환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감염성 관절염의 경우 여러 가지를 보고 진단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슬관절에 찬 감염성 물을 주사로 뽑아 검사하는 것이다. 이때 백혈구 수치가 높게 나오면 감염을 의심하고 빠른 시간 안에 세척술을 시행해 줘야 하는데, 이 할머니는 애매한 수치가 나왔다.
염증 수치가 높지는 않았지만 전신에 발열이 있었다. 게다가 엑스레이 상으로 무릎에서 많이 발생하는 가성통풍(통풍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질환) 양상의 석회화 소견이 보여 수술을 미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바로 관절경을 이용해 무릎 관절을 깨끗하게 세척하고, 무릎 윤활액을 감싸고 있는 활액막도 제거했다.
수술 후 할머니는 다행히 빠르게 회복되었고, 회진을 돌 때마다 따뜻한 미소와 함께 필자를 맞아 주셨다. 당신에게 내 또래 아들이 있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며, 필자를 아들처럼 대해 주셔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는 퇴원 후 외래로 경과를 살펴보았다. 열도 떨어지고 염증수치는 모두 좋아졌지만 관절염 자체가 워낙 심하다 보니 만성통증으로 외래를 지속적으로 방문하게 됐다.
먹는 약도 드리고, 관절강 내 주사도 놓아드렸으나 증상을 드라마틱하게 좋아지게 할 수는 없었다.
할머니의 무릎 통증을 효과적으로 없애려면 인공관절 수술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연세가 90세에 가까워서 수술을 권하기가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수술 얘기를 꺼냈을 때 할머니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필자가 수술을 하라고 하면 수술도 하시겠다는 것이다. 결국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1년이 지나 90세가 된 할머니의 건강상태가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심폐기능도 괜찮고, 혈액검사에서도 이상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보통 인공관절 수술의 경우 양쪽 무릎이 다 좋지 않아서 양쪽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다행히 할머니는 왼쪽만 수술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최근 도입한 로봇 인공관절 수술을 하면 정확한 3차원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관절을 삽입할 위치를 정확하고 파악하고, 절개하거나 뼈를 깎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만큼 수술 중 출혈이 적고, 출혈로 인한 부작용이나 합병증을 낮출 수 있어 조금은 마음의 부담을 덜고 수술할 수 있었다.
수술은 아무 문제 없이 잘 끝났고, 수술 후 회복도 90세의 고령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되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인공관절 수술 후 회복이 60~70대보다는 더딘 편인데, 할머니는 씩씩하게 잘 걸어 다니셨고, 퇴원 후 자주 가시는 양로원에 가서도 자랑을 하셨다고 한다.
이럴 때면 의사로서 여간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할머니는 91세가 되셨고, 보호자의 부축이 없어도 정정하게 잘 걸어서 외래로 오신다. 그런 할머니를 볼 때마다 '정형외과 의사가 되길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로봇시스템처럼 첨단 의료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더욱 많은 환자들이 제약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도움말=목동힘찬병원 김태현 원장(정형외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