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대표 아역'을 완전히 벗었다. 배우 박지빈(28)이 '살인자의 쇼핑목록'을 타고 새로운 얼굴을 입으며 성장했다.
tvN 수목드라마 '살인자의 쇼핑목록'(한지완 극본, 이언희 연출)은 평범한 동네에서 발생하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마트 사장, 캐셔, 지구대 순경이 영수증을 단서로 추리해나가는 슈퍼마켓 코믹 수사극. 박지빈은 그 속에서 미스터리함을 간직한 인물인 생선을 연기하며 성소수자를 표현하는 등 쉽지 않은 연기를 해냈다.
박지빈은 최근 스포츠조선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대본이 너무 재미있어서 하게 됐다. 그 속에서 생선이란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 생각인지 감독님께 물어봤고, 굳이 꼭 '트랜스 젠더'여야 하느냐고 여쭈기도 했다. 감독님은 '초고부터 이 캐릭터가 있었다'고 하셨다. 마트 안의 캐릭터들이 한 명씩 용의선상에 올랐다가 제외가 됐는데 그들이 용의선상에 올라야만 했고, 왜 그랬는지 이유가 있으면서 제외가 되는 것 등이 드러나야 한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 과정들은 실제로 '살인자의 쇼핑목록'에 촘촘하게 담기며 캐릭터의 설득력을 부여했다. 박지빈은 "제가 과하게 뭔가를 표현하지 않는다면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생선은 박지빈이 지금까지 맡아본 바 없는 캐릭터. 박지빈은 "처음 맡아보는 캐릭터에 장르물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예민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표현될 수 있는 캐릭터라서 많이 조심스러웠다. 감독님도 자문을 구하시고 저도 주변에 자문을 구하면서 과장하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표현하려고 했다. 외적으로 꾸미는 것도 과하게 하지 않으려 했고, '예뻐지려면 무슨 노력을 할까'까지만 생각했던 것 같다. 화장을 열심히 하고, 다리도 예뻐보이고 싶고, 몸매도 예뻐보이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오히려 더 간다면 불편하게 받아들여지고 변질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역할을 위해서는 포기할 것도, 취해야 할 것도 있었다. 노력을 중단해야 했던 것들도 존재했다. 박지빈은 "여장을 하고 거울을 처음 보고는 사실 '나쁘지 않은데?' 싶었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면서 '가발까지 쓰면 괜찮겠다' 싶었다. 제모도 해야 했고, 하고 있던 운동도 강제로 멈춰야 했다. 운동을 한창 할 때였는데 트레이너에게 '이런 캐릭터를 맡았다고'고 얘기하고는 운동도 조절했다. 제가 원래 일을 할 때 뭘 잘 안 먹는 스타일인데, 이 캐릭터를 하면서는 더 안 먹었다. 그만큼 예민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살도 빠졌다. 몸무게도 3~4kg이 빠졌고, 근손실도 많이 왔다"고 밝혔다.
결정부터 결과까지 쉼없이 이어진 작품이다. 박지빈은 "작품의 타이밍이 희한했다. 거부감이 없이 다가왔다. 그 타이밍에 '어 재미있다! 하고 싶다!'했던 작품이다. 그래서 오히려 출연하는 선배님들이 '쉽지 않았겠다'고 하셨는데, 만약 고민을 했다면 안 하게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고민을 하는 순간 망설였던 것이 없었다"며 "기억에 남는 것은 여장에 대한 반응이 남았다. 동료들도 캡처를 올려주며 '너무 예쁘다'고 칭찬해줬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연기 잘해요'보다도 '예쁘다'는 반응이 좋았던 작품이다. 예뻐지려고 노력을 했고, 그만큼 잘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 아역'으로 등장해 데뷔 22년차를 맞은 박지빈은 아역 배우 출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자유로운 편. 그는 "남들은 제가 너무 걱정을 안 하고 산다고 하고, 저는 그런 생각이 별로 없지만 오히려 남들이 걱정을 가져서 '내가 가져야 하나'하는 생각은 있다. 아역 이미지를 탈피하고 뭔가를 벗어나고, 어떤 시선에서는 그게 필요한 숙제로 보일 수도 있지만, 풀 수 없는 숙제잖나. 이걸 풀려고 해서 풀려면 누구나 풀었겠지.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작품으로, 원하는 인생을 살 거다. 대중들이 나를 보는 게 맞고,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데 어떤 이미지가 필요하다면 노력해서 채우는 것이 배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사적으로 내가 SNS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막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걸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잖나. 자연스러운 흐름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지빈이 왜 이렇게 늙었지' 그럴 수도 있는 것 또한 시선이다. 그것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직업이다"고 했다.
'살인자의 쇼핑목록'은 또 다른 색을 칠한 작품이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금이 박지빈이 소화할 수 있는 스펙트럼'의 작품을 해왔다는 그는 '살인자의 쇼핑목록'으로는 또 다른 색을 칠했다. 그는 "맞다, 맞지 않는다가 아니라 새로운 스펙트럼의 작품이었다. 전혀 경험해보지 않았고 경험하기 어려운 캐릭터였으니까. 약간 새로운 색이 칠해진 그런 느낌이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경험도 달라지고 아팠던 경험도 무뎌지고, 할 수 있는 표현의 양도 달라지는 것 같다"는 박지빈은 여전히 촬영장을 두려워하는 중. 박지빈은 "아직도 항상 촬영장은 불안하고 두렵고, 뭔가 소극적이고 그런 것 같다. 실수할 수 있고, 어렸을 때부터 그런 현장에서 연기를 해왔다"고 하기도.
박지빈은 "혼자만의 생각이 길게 이어질 때가 있었는데 열여덟, 열아홉에는 '20대는 이렇게 살아야지'해놓고 그대로 군대를 갔고, 막상 다녀오니 인생에서 철저히 이렇게까지 혼자가 돼본 적이 처음이었다. 그때도 생각했고, 그 시간들이 군대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내가 꿈꿨던 20대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 30대의 큰 틀도 열심히 세우고, 더 단단히 세우려 노력 중이다. 서른이 되자마자 하고 싶은 것은 서른의 나를 보고 싶다. 어떤 시야를 가졌을지 궁금하고, 다른 쪽으로 하고 싶은 게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직까지 앞으로의 내 인생이 더 궁금하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들, 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나 혼자만의 인생을 책임져볼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변화도 기대를 모은다. 박지빈은 "이제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것보다는 편안한 배우가 되고 싶다. 저도 편안하게 조금 더 여유를 갖고, 현장에서 제가 스스로 그런 것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불안하고 두렵고, 그런 것들이 현장에서 긴장을 엄청 하지만 사람들이 하나도 모른다. 저는 사실 연기력 논란을 가장 크게 걱정했다. 해보지 않았던 분야라 어떻게 표현을 하고,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대중들의 몫이니 평가받기 나름인데, '살인자의 쇼핑목록'에서 혹평을 받을 수 있으니 걱정했었다. 스스로 현장에서 편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편안하다는 것이 연기에 대한 가벼운 마음보다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대해 '괜찮아. 그만큼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라는 인색이 30대에는 조금 생길까 싶다. 물론 기분 좋은 떨림이고 두려움이지만, 그래서 저를 못 내려놓나 싶기도 하다. 30대가 되든, 40대가 되든 저는 저와 싸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지빈은 '살인자의 쇼핑목록' 후 '블라인드'로 돌아온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