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2012년 런던올림픽 3, 4위전, 운명의 장난은 너무 가혹했다. 상대가 다름아닌 일본이었다. 한일전은 늘 그랬듯 '올 오어 나싱'이다. "공중볼 경합이 벌어지면 갖다 부숴버려." 당시 올림픽대표팀을 지휘하던 홍명보 감독의 주문도 더 강렬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한국은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했다.
한일전은 늘 전쟁이었고, 앞으로도 변색되지 않는 거대한 줄기다. 사상 최초의 축구 한일전에 얽힌 비화와 연대기를 담은 소중한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스포츠조선을 거쳐 현재 MBN에서 스포츠기자로 현장을 누비고 있는 국영호 기자가 쓴 '최초의 韓日戰, 1954년 월드컵 첫 본선 진출 여정'(북콤마, 355쪽)이 발간됐다.
한일전은 절실하고 간절했다. 축구 경기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1954년부터 2022년까지의 한일전 결과는 통산 80경기에서 42승23무15패로 한국의 우위다. 책은 그 답을 찾기 위해 1954년 스위스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이 우여곡절 끝에 첫 한일전에서 승리한 뒤 처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여정을 한 편의 소설처럼 그려냈다.
1954년 3월 스위스월드컵 예선 13조, 사상 최초의 축구 한일전. 그날 수 년, 길게는 수백 년간 켜켜이 쌓이고 응축된 다양한 이야기와 사연이 일순간 폭발했다. 월드컵 참가 동기부터 이승만 대통령 설득, 재일동포의 헌신적 노력, '코리아 유나이티드(남북한 선수+재일동포 선수)' 결성과 경기 준비 과정, 드라마 같은 경기 내용, 국민의 열광적인 반응까지. 선수들의 기술과 대표팀 전력을 떠나 정신과 정서까지 고려해야 일방적인 한일전 기록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1954년 폭발한 한국 축구의 민족주의는 세대와 세대를 거쳐 DNA처럼 뿌리 깊게 각인됐다. 책은 최초의 한일전 자체가 지금의 한일전을 만들어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한국 축구의 민족주의는 오롯이 그 첫 한일전에서 비롯했다는 생각이다. 축구 역사에서 봤을 때 그 자체로 '보존'되어야 하는 경기임이 틀림없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