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그라운드에는 '우승 불문율'이 있다. 패할 경기는 비기고, 비길 경기는 승리하는 것이다. 울산 현대의 5일 제주 원정은 패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1-0으로 리드를 잡았지만 수비의 핵인 김영권이 전반 44분 퇴장당했다. 뒤이어 제주가 전반 종료 직전 동점골을 터트리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울산은 후반 10명이 싸워야하는 악조건이었다.
'되는 팀'은 달랐다. 후반 6분 엄원상의 골이 터지면서 다시 리드를 잡았고, 제주의 파상공세를 10명이 혼연일체가 돼 막고, 또 막았다. 적지에서 비기기만해도 나쁘지 않은 결과를 승리로 변색시켰다. 설명이 필요없는 '귀중한 승점 3점'이었다. 퇴장으로 풀 죽었던 김영권의 입가에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마침내 미소가 번졌다.
모두가 수훈갑이지만 울산의 선두 질주에는 '신입 삼총사'의 대활약이 있다. 레오나르도, 아마노, 엄원상, 이들에게는 '적응'이라는 단어가 필요없었다. 3명은 울산이 터트린 12골 가운데 무려 75%인 9골을 책임졌다. 셋 다 사이좋게 3골씩 기록 중이다. 우스갯소리로 '이동준(헤르타 베를린) 이동경(샬케04) 오세훈(시미즈)이 누구?'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하다.
레오나르도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반박자 빠른 슈팅 타임이 압권이다. 수비 가담은 물론 동료들과의 연계플레이도 뛰어나 'K리그의 맞춤형 외인'으로 새롭게 자리잡았다. 제주전 선제골도 그랬지만 아마노는 세트피스의 달인이다. 전매특허인 자로잰 듯한 왼발 프리킥 능력에다 패싱력과 개인기까지 겸비했다.
엄원상의 질주 본능은 K리그 팬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강력한 무기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잘할 줄은 몰랐다. 골결정력까지 만개했다. 엄원상은 제주전 결승골을 포함해 최근 4경기에서 3골을 폭발시키며 울산의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현역시절 표정을 잃을 수 없는 '무뚝뚝함의 대명사'였다. 지도자로 변신한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2시즌 초반에는 세 선수의 활약 덕에 유독 웃을 일이 많다.
그는 제주전 후에는 "많은 경기를 했지만 오늘 같은 승리를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대단한 승리를 했다. 김영권이 퇴장당하고, 전반 종료 직전 실점했다. 어느 누구도 이길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수들조차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10명이 울산 현대다운 축구를 계속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득점도 나왔고, 득점 이후에도 큰 찬스를 내주지 않고 좋게 마무리했다. 중요한 순간에 대단한 승리였다"며 기뻐했다.
울산에는 늘 꼬리표처럼 '만년 2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결정적인 순간 K리그 5연패를 달성한 전북 현대의 제물이 됐다. 2022시즌은 여전히 초반이지만 그 기세는 예년과는 사뭇 다르다. 홍 감독은 "'위닝 멘탈리티'는 편의점 가서 쉽게 살 수 없다. 대가를 치르면서 얻는 것이다. 우린 그 대가를 충분히 치렀다. 그 부분이 큰 힘이 됐다"고 웃었다.
'신입 삼총사'를 향해서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볼 뿐이다. "레오나르도, 아마노, 엄원상은 개인 기량으로는 이미 검증이 됐다. 다만 전체적인 울산 축구에 기본을 이해해야 개인 성향과 그들이 가진 기술들이 나온다. 팀의 핵심적인 부분을 알려주면서 팀 적응하는데 시간을 줄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콤비네이션이 이런 부분에서 잘 되고 있다."
승점 20점 고지를 가장 먼저 밟은 울산 축구의 봄은 더없이 화려하다. '신입 삼총사'가 몰고 온 '봄바람'이 향기롭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