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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피 Jr, 약물 섞이지 않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스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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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2016년 1월 2명의 레전드가 BBWAA(전미야구기자협회) 투표에 의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켄 그리피 주니어와 마이크 피아자다.

그 해 첫 자격을 얻은 그리피가 올린 득표율은 무려 99.3%였다. 1992년 톰 시버가 세운 명예의 전당 헌액 최고 득표율 98.8%를 14년 만에 경신한 것이다. 3년 뒤 100%를 찍은 마리아노 리베라에 의해 깨졌지만, 그리피의 당시 득표율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수치로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당연한 결과라며 환영했다.

그해 배리 본즈가 얻은 득표율은 44.3%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자격 4번째 해였지만, 약물 스캔들로 비난받고 있던 본즈를 향한 투표단 시선은 곱지 않았다. 본즈는 결국 마지막 10년째인 올해도 BBWAA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최종 탈락했다.

그리피와 본즈는 동시대를 주무른 전설적인 거포들이다. 각각 아버지도 메이저리그를 호령한 스타 출신이라는 점도 같다. 그러나 선수 시절 뿐만 아니라 은퇴 후에도 둘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대조적이다. 통산 기록에서는 본즈가 앞설 지 모르지만, 그리피는 한 번도 약물 뿐만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스캔들에 연루된 적이 없다. 마이너리그 시절인 1988년 아버지와의 갈등, 부진, 우울증 등이 겹치면서 자살 시도를 했었지만, 불과 18살이었다.

1987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시애틀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은 그리피는 1989년 화려하게 등장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강한 타격과 안정된 외야 수비로 주목받았던 터라 그에게 쏠린 관심은 요즘으로 치면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급이었다.

그가 달성한 기록을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11년 연속을 포함해 13번의 올스타, 10년 연속 골드글러브 및 7번의 실버슬러거를 수상했다. 1997년에는 타율 0.304, 56홈런, 147타점을 올리며 생애 유일했던 MVP에도 올랐다.

1990년말과 2000년대 초반 약물 유혹이 끊임없이 따라다녔지만, 그는 세월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2000년 초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된 그리피는 곧바로 9년 1억1250만달러에 장기계약을 맺는다. 슈퍼스타 치고는 헐값이었다. 고향이자 아버지가 지도자로 몸담고 있는 팀에서 선수 생활을 끝내겠다는 마음 뿐이었다고 한다. 돈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적 첫 시즌인 2000년 145경기에서 40홈런, 118타점을 기록한 그리피는 이듬해부터 하락세를 탔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부상이 계속됐고,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힘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피다운 마지막 시즌은 144경기에서 30홈런, 93타점을 때린 2007년이다. 이후 그리피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거쳐 친정팀 시애틀로 돌아갔고, 2010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은퇴 후인 2013년 시애틀이 그리피를 구단 명예의 전당에 올리자 이듬해에는 신시내티도 같은 절차를 밟았다. MLB.com은 지난달 22일 '테드 윌리엄스, 키스 에르난데스, 조지 브렛, 토니 그윈, 마크 그레이스, 라파엘 팔메이로, 돈 매팅리, 래리 워커, 윌 클락 등 역사상 아름다운 스윙을 가진 좌타자들이 즐비하지만, 그중 최고는 켄 그리피 주니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선수 시절도 아름답고 깨끗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