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초반 A씨는 그 날도 어김없이 걷기운동을 위해 집을 나섰다. 매일 습관처럼 하는 걷기운동은 A씨에게는 이제 식사 후 양치질보다 익숙하다. 그 덕분에 70대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관절건강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다는 A씨.
하지만 요즘 들어 표정이 썩 밝지 못하다. 한 달 전부터 갑자기 왼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해 우선 급한대로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다 먹고 있던 터라 '관절여왕' 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평소보다 산책 시간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병원에 가보자는 다짐으로 집을 나선 A씨. 집 근처 정형외과 의원에서는 엑스레이를 보더니 큰 병원을 가보라고 한다. 관절 전문 정형외과 병원에서 엑스레이와 MRI 검사를 한 후 받은 진단은 바로 '자발성 슬관절 골괴사증'. 난생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어안이 벙벙하다.
"자발성 슬관절 골괴사증? 그게 대체 무슨 병인가요?"
"쉽게 말하면 뼈 조직에 공급되는 혈액의 양이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감소하면서 뼈 조직이 죽어가는 병이에요."
의사의 친절한 설명에도 A씨의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뼈 조직이 죽어간다는 건 뼈가 썩어가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다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들으니 A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다가 제가 이런 이상한 병에 걸린 건가요?"
한 달 전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던 무릎이었다. 건강했던 무릎이 불과 한 달 만에 뼈 조직이 죽다니 원인을 알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자발성 슬관절 골괴사증의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스테로이드에 노출되거나 알코올 섭취 및 겸상 적혈구 질환을 가진 환자에서 이차적으로 골괴사가 발생할 수 있지만 슬관절 자발성 골괴사는 특별한 원인 없이 일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최근에는 무릎 관절경 수술 후 발생한다는 보고도 있지만 원인불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발성 슬관절 골괴사증은 주로 고령의 나이에서 A씨처럼 갑작스런 무릎 통증과 함께 발생한다. 골괴사는 '경골 내측 고평부(정강이뼈 안쪽 맨 위의 평평한 부위)'보다는 대퇴 내과(넓적다리 안쪽)에 발생하고, 남성보다는 여성에서 3~5배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자발성 슬관절 골괴사증은 진행 정도에 따라 치료방법이 달라진다. A씨처럼 초기에 발견한 경우에는 약물치료, 주사치료 등의 보존적 치료로 통증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초기에는 단순 엑스레이 촬영만으로는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결국 골 괴사가 진행돼 연골 아래에 있는 준연골인 연골하가 골절된 후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골 괴사가 진행되면서 연골하 골절(subchondral fracture)이 심해져 골 조직이 붕괴되면 절골술이나 인공관절 치환술과 같은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골 조직이 많이 무너져 있으면 인공관절 치환술을 고려해야 한다.
요즘에는 의학이 발달해 자발성 슬관절 골괴사증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해도 수술적 치료로 많이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 오기 전에 미리 발견하고 보존적 치료로 통증을 다스리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려면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무릎 통증을 예사로 보아서는 안 된다. 자발성 슬관절 골괴사증은 특별한 원인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무릎 통증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에 갑작스럽게 무릎 통증이 발생하는 경우 조기 진단 및 치료를 위해 되도록 빠른 시일 내로 정형외과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도움말=부산힘찬병원 이희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