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별이 졌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새벽 7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프로와 아마추어 막론, '천재'를 키워낸 아낌없는 지원
이 회장의 스포츠 사랑은 정평이 나 있다. 서울사대부고 시절 레슬링과 인연을 맺었다. 2학년 때는 전국대회에서 입상도 했다. 럭비에도 관심을 가졌다. 1997년 출간한 자작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럭비는 한 번 시작하면 눈과 비가 와도 중지하지 않는다. 걷기도 힘든 진흙탕에서 온몸으로 부딪치고 뛴다. 오직 전진이라는 팀의 목표를 향해'라고 적었다.
그의 스포츠 사랑은 한국 스포츠 역사로 이어졌다. 이 회장은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레슬링협회 21∼24대 회장을 지냈다. 한국 레슬링은 이 회장의 전폭적 지원 속에 '황금기'를 보냈다. 당시 한국 레슬링은 올림픽에서 7개, 아시안게임 29개, 세계선수권 4개 등 40개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프로 스포츠 발전에도 초석을 놓았다. 이 회장은 삼성과 현대가 한국 스포츠를 양분하던 시절 여러 종목의 팀창단과 운영을 주도했다. 삼성은 현재 프로축구, 프로야구, 남녀 프로농구, 프로배구단과 탁구, 레슬링, 배드민턴, 육상, 태권도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 회장의 관심은 단순히 종목과 구단에 국한되지 않았다. 한국 스포츠 역사를 새로 쓴 '천재'들을 일찍이 알아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90년대에는 '골프여제' 박세리를 후원했다. 2000년대는 '수영 천재' 박태환과 '피겨퀸' 김연아 지원에 앞장섰다. 박세리는 세계 골프 역사를 새로 썼다. 박태환과 김연아는 올림픽에서 각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회장의 경영 철학 중 하나였던 '인재 양성'이 스포츠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다.
▶발로 뛴 스포츠 외교, 평창동계올림픽 결실
이 회장의 발자취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스포츠 외교다. 삼성그룹 회장에 오른 1987년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1993년부터 3년간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거쳐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 기간 중 IOC 위원으로 선출됐다. 이 회장은 20년 넘게 세계무대를 활발히 누볐다.
외교력은 탁월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수영 자유형 400m 예선에서 박태환이 실격 해프닝을 겪은 뒤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힘을 발휘했다. 실격 번복 직후 당일 오후 펼쳐진 박태환의 결승전에서는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을 비롯해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 온가족과 함께 관중석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을 보냈다.
이 회장의 스포츠 외교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 회장은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부터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까지 170일간 해외 출장을 소화했다. 100여 명의 IOC 위원을 일일이 만나 '평창의 꿈'을 전파했다. 총 이동거리만 21만㎞. 평창은 2011년 더반에서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를 따돌리고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지로 확정됐다. 아쉽게도 이 회장은 평창올림픽을 직접 보지 못했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심폐소생술(CPR)을 받은 이 회장은 치료에만 전념했고, 2017년 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이 회장은 떠났지만, 그가 뿌린 스포츠의 씨앗은 계속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로컬스폰서로 IOC와 인연을 맺은 삼성전자는 1997년 IOC와 TOP(The Olympic Partner) 후원 계약을 했다. 삼성전자는 올림픽 무선통신 분야 공식 후원사로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부터 2028년 LA하계올림픽까지 30년간 IOC 최고 레벨의 후원사로 함께 걸어간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