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북부인 서산·태안 지역에는 주민 148만명이 거주하며, 지역 특성상 고령층이 많아 관상동맥질환, 심부전, 심장판막증 등의 심혈관질환 환자의 비중이 높다.
그러나 지역의 유일한 공공병원인 서산의료원은 심장과 혈관질환을 담당하는 순환기내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 심혈관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이나 대도시의 대학병원까지 가야만 했다. 환자들은 치료를 받고 돌아온 뒤에도 진료를 받으러 다시 서울까지 가야 하는 불편이 이어졌다. 꼭 심혈관질환 환자가 아니어도 순환기내과 의사가 시행해야 하는 심장검사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반경 100㎞내에 순환기 전문 의사가 없던 서산의료원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같은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병원장 이성호)은 지난해 10월부터 서산의료원과 협약을 맺고 순환기내과 교수 2명을 파견해 일주일에 두 번씩 서산의료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특히 파견 의료진은 병원 내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으며, 국내 심부전 명의로 꼽히는 전 병원장 순환기내과 유규형 교수와 현 진료부원장인 한성우 교수다.
두 교수는 월요일과 목요일 하루씩 번갈아 가며 왕복 200㎞ 거리의 서산의료원까지 직접 내려가서 진료를 보고 있다.
진료가 있는 날이면 새벽 6시에 출근해 담당환자들의 상태를 살핀 뒤 오전 7시에 병원 차량을 타고 서산의료원으로 이동한다. 1시간 넘게 차를 타고 서산의료원에 도착한 뒤 이곳의 다른 의료진들과 같이 오전 8시 30분부터 진료를 시작한다.
지역에 뛰어난 순환기내과 의사가 왔다는 소식에 두 교수의 진료가 있는 날이면 많은 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그동안 의사가 없어 멀리 다른 지역 병원까지 찾아가 진료를 보거나 아예 치료를 포기하고 있던 환자들은 가까운 지역에 있는 서산의료원에서 심혈관질환 진료를 볼 수 있게 되자 기쁜 마음으로 병원을 찾고 있다.
한성우 교수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진료실을 찾은 한 환자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오래된 처방전을 꺼내며 "의사가 왔다는 말을 듣고 몇 년만에 진료를 보러 왔다"고 말했다.
안면도에 사는 63세 남성 A씨는 최근 심장이 안 좋아 1시간가량 차를 타고 병원에 왔다. 진료결과 심장혈관에 협착이 생기는 협심증이 의심돼 정밀진단을 받게 됐다. 그는 "전립선비대증으로 먹는 약 때문에 나타난 별것 아닌 증상으로 생각했었는데 협심증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었다"며 "가까운 곳에 진료를 봐주실 의사가 있어서 조기에 병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61세 남성 B씨도 한달 전 심방세동으로 인한 빈맥으로 한림대동탄성심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뒤 이곳에서 진료와 약 처방을 받고 있다. 그는 "전 같으면 약을 타기 위해 다른 지역까지 가야 해서 진료를 볼 엄두도 안 났는데 서산까지 내려와 진료를 보는 의사가 있어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두 교수는 하루 평균 4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하는데, 대부분 처음 진료를 보는 환자여서 환자상태 파악에만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유규형 교수는 "심장초음파 등 여러 검사들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환자들보다 3~4배의 시간이 필요하고, 이로 인해 실질적으로 비교하면 100명 이상의 환자를 보는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환자가 몰리는 날이 많아 진료 종료시간을 한참 넘긴 저녁 7시까지도 진료가 이어질 때가 많다. 서산의료원에서 진료를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째가 됐지만 이들은 변함없는 마음으로 진료를 하고 있다.
한성우 교수는 "하루 3시간 이상 차를 타고 이동하고, 많은 환자들을 보느라 한번 다녀오면 온몸이 녹초가 될 정도로 힘들다"며 "하루를 꼬박 서산에서 보내야 하기에 본원에서 봐야 할 환자 진료까지 몰리게 돼 이중삼중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교수는 "이곳에서 진료를 시작한 뒤 환자들로부터 '이번에는 제발 계속 머물러 달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몸은 힘들지만 의사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 앞으로도 서산의료원에서의 진료를 계속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파견진료는 큰 성과를 내고 있다. 한성우 교수는 최근 가슴에 통증을 느껴 서산의료원을 찾은 50대 환자에게 심전도 및 심장초음파를 시행 후 급성심근경색으로 진단했다. 일분일초가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 교수는 직접 구급차에 동승해 환자를 한림대동탄성심병원으로 이송했고, 완전히 막혀있던 우측 관상동맥에 스텐트 삽입술을 시행해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이후 서산의료원에서 외래를 통해 추적관찰을 하고 있다.
서산의료원에서는 주 1회 가량 급성관상동맥질환 등으로 긴급한 시술이 필요한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데, 즉시 한림대동탄성심병원으로 전원해 시술을 통해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에서 시술을 받은 뒤에는 서산의료원에서 외래진료를 통해 지속적으로 경과관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환자들의 만족도도 매우 크다.
또한 서산의료원에서는 기존에 긴급한 중환자 발생 시 전원이 가능한 병원을 알아보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지만, 두 기관의 협약을 통해 곧바로 한림대동탄성심병원으로 전원시킬 수 있게 돼 골든타임을 단축시킬 수 있게 됐다.
이성호 병원장은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은 지역 거점 대학병원으로서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의료기반이 열악한 지역에 본원의 우수한 의료서비스와 신속한 응급전원 시스템을 공유함으로써 지역의료가 활성화되고 더 많은 국민들이 좋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은 지역병원들과의 진료협력 체계 구축으로 지난 8월 보건복지부의 5G 기반 원격협진 시범사업 실증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지역의 의료공백을 메우고 의료기관 간의 이상적인 협진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