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솔직히 조금 더 빨리 수술할 수도 있었는데, 본인이 규정 이닝은 꼭 던지고 싶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SK 와이번스 문승원이 수술대에 오른다. 문승원은 오는 13일에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기로 했다. 주위 코칭스태프나 동료, 구단 관계자들은 지난해부터 언젠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제 때가 됐다는 판단을 내렸다.
지난 4일 키움 히어로즈전이 문승원의 올 시즌 마지막 등판이 됐다. 시즌 풀타임을 뛰면서도 5승에 머물러있었던 문승원은 키움의 까다로운 타선을 상대로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완벽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면서 평균자책점을 3.65까지 끌어내렸다.
문승원이 정규 시즌 일정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에서 수술을 결정한 이유는 다음 시즌 개막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다. 현재 의학 기술로는 뼛조각 제거 수술은 회복 속도가 빠르고 경과도 좋은 편이다. 더 늦기 전에 수술을 받아야 재활 과정과 내년 훈련 일정까지 고려해 원하는 시기에 복귀할 수 있다. SK 코칭스태프와 문승원은 다음 시즌 초반 스타트를 바라보고 있다.
사실 일찌감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진 SK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문승원이 더 빨리 수술을 받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승원이 가지고 있는 개인의 목표는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뚜렷한 의지가 있었다. 바로 규정 이닝이다. 키움전 전까지 규정 이닝에 5⅓이닝 모자랐던 문승원은 7이닝 투구로 145⅔이닝을 채웠다. 비로소 4년 연속 규정 이닝 도달이라는 목표에 당도했다. 지난 4년간 그가 꾸준히 풀타임 선발 투수로 뛰었다는 증거의 기록이기도 하다.
비록 문승원은 승운이 따르지 않는 투수였다. 4년간의 풀타임을 뛰면서 10승은 지난해 딱 1번이 전부다. 2017년에는 6승을 하는 동안 12번의 패전을 기록했고, 올 시즌도 마찬가지로 규정 이닝에 도달하고도 6승에 그쳤다. 시즌 초반 퀄리티스타트를 연달아 기록하고도 승리보다 패전이 더 많았던 불운 그리고 저조했던 팀 성적이 미친 영향이다.
하지만 2020년의 문승원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그의 시즌 평균자책점 3.65는 10개 구단 국내 선발 투수들 가운데 가장 좋은 수치다. 투수 부문 주요 성적에서 외국인 투수들이 상위권을 모두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거둔 의미있는 결실이다.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상위권 투수들에는 못미치지만, 그만큼 좋은 활약을 했다는 증거다.
또 SK의 선발진 구성이 개막 당시와 비교해 많이 바뀌었음에도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켰다는 의미가 있다. 외국인 투수 2명과 박종훈-문승원-김태훈으로 5인 로테이션을 꾸렸던 SK는 현재까지 핀토와 문승원, 박종훈을 제외한 나머지 2자리를 끊임없이 바꿔왔다.
하위권 팀의 에이스. 쓸쓸하지만 빛나는 타이틀을 안고 문승원이 2020시즌을 마무리한다. 복귀 이후에는 또다른 목표와 더 커진 책임감이 따를 것이다. 문승원의 시계는 이미 2021년을 향해 있다.
인천=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