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김도훈 울산 감독이 천신만고끝에 '포항 트라우마'를 털어냈다. 'FA컵 마법사'의 화려한 귀환이다.
김도훈 감독이 이끄는 울산 현대가 23일 오후 7시30분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2020 하나은행 FA컵 4강전에서 '동해안 더비' 숙적 포항 스틸러스를 승부차기혈투끝에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올 시즌 '동해안 더비'는 단순한 라이벌전 이상의 '축구전쟁'이었다. 심기일전, 와신상담한 울산은 리그 포항과의 2경기에서 압승했다. 6월6일 원정에서 4대0으로 대승했고, 8월15일 안방에서 2대0으로 완승했다. 그러나 올시즌 3번째 외나무 혈투, FA컵 준결승전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파이널라운드를 앞둔 22라운드 상주상무전에서 4대3으로 승리, 3위에 오르며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 포항이 2013년 이후 7년만의 FA컵 정상 결의를 불태웠다.
김기동 포항 감독은 울산전을 앞두고 "지난 경기 패배 때문에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보다 중요한 길목, 중요한 시점인 만큼 이기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울산의 우승을 막아선 리그 최종전 포함, 큰경기마다 찬물을 끼얹었던 트라우마를 일깨웠다. 김도훈 울산 감독은 '올해 두 차례 승리로 지난해 앙금이 풀어졌느냐'는 질문에 "아직 앙금이 풀리지 않았다.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초반 승부는 포항쪽으로 기울었다. 전반 12분 '울산의 투사' 김태환의 발끝에서 자책골이 나왔다. 측면에서 송민규의 강한 압박을 피해 골키퍼 조현우에게 건넨 김태환의 왼발 로빙 백패스가 어이없게도 골대 안으로 빨려들었다. 올시즌 45골 15실점의 최다득점, 최소실점팀 선두 울산은 자책골이 전무했다.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자책골이 이겨야 사는 단판승부, FA컵 준결승에서 나왔다. 징크스의 암운이 드리우는 듯했다. 0-1로 전반을 마쳤다.
김도훈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이청용, 고명진을 빼고 주니오, 윤빛가람을 투입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후반 8분, 울산의 동점골이 터졌다. 2015년 인천에서, 2017년 이후 울산에서 FA컵 주요 고비마다 한방을 터뜨려주던 '김도훈의 페르소나' 김인성이었다. 홍 철의 날선 왼발 프리킥이 강현무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튕겨나온 직후 김인성이 번뜩였다. 지체없이 오른발로 골망을 흔들었다. 올 시즌 포항과의 2경기에서 잇달아 골맛을 본 김인성이 '동해안 더비' 3경기 연속골로 울산을 구했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졌다. 후반 12분 팔라시오스, 후반 15분 이광혁의 날카로운 슈팅을 조현우가 몸을 던져 잡아냈다. 후반 19분 김인성의 킬패스를 이어받은 주니오의 슈팅은 포항 골키퍼 강현무가 막아냈다. 후반 31분 김기동 감독은 이광혁을 빼고 상주전 해트트릭의 주인공 팔로세비치를 투입하며 승부를 결정지을 뜻을 분명히 했다. 후반 37분, 조현우의 동물적인 선방이 빛났다. 일류첸코의 헤더가 골라인을 넘기 직전 펀칭으로 쳐냈다. VAR 판독 끝에 노골이 선언됐다.
한치 양보 없는 승부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연장 전반 8분 포항은 팔라시오스를 빼고, 고영준을 투입했다. 울산은 11분 신진호 대신 '영건' 이동경을 투입했다. 연장 전반 10분 고영준의 헤더가 아슬아슬하게 불발됐다. 포항은 연장 전반 15분 오범석을 빼고 이승모를 투입했다. 동해안 더비의 승자를 가리기엔 연장전 120분도 부족했다.
운명의 승부차기, 울산 제1키커 비욘 존슨이 가볍게 성공했다. 포항 제1키커 일류첸코의 슈팅을 '빛현우' 조현우가 왼손으로 쳐냈다. 울산 두 번째 키커, 골대 상단을 노려찬 원두재도 성공이었다. 포항 두 번째 키커 심동운은 골망을 흔들었다. 울산 세 번째 키커 김인성의 슈팅이 강현무에게 막혔지만 VAR 판독 결과 킥 전에 움직였다는 판정이 나왔다. 그러나 연거푸 찬 김인성의 슈팅도 막혔다. 포항의 세 번째 키커 강상우가 성공하며 2-2 팽팽한 흐름이 이어졌다. 울산 네 번째 키커 윤빛가람의 낮고 빠른 슈팅이 성공했고, 포항 네 번째 키커 이승모도 성공했다. 3-3. 울산의 다섯 번째 키커 주니오가 , 포항의 다섯 번째 키커 주니오의 슈팅이 공중으로 높이 떴다. 골무원, 득점왕 주니오의 대반전이었다. 포항의 다섯 번째 키커 팔로세비치의 슈팅마저 공중으로 높이 떴다. 하지만 울산 여섯 번째 키커 정승현의 슈팅을 포항 수문장 강현무가 막아섰지만, 포항 여섯 번째 키커 강현무의 슈팅을 국대 골키퍼 조현우가 또다시 막아섰다.숨막히는 대접전이 이어졌다. 일곱 번째 울산 이동경의 슈팅이 불발된 후 포항 캡틴 최영준의 슈팅도 또다시 골대를 빗나갔다. 울산의 여덟 번째 키커 홍 철이 가볍게 골망을 흔든 직후 포항 여덟번 째 키커 송민규의 슈팅이 불발돼ㅑㅆ다. 울산이 4대3으로 승리하며 뜨겁게 포효했다.
'K리그 레전드' 김도훈 감독이 사령탑으로서 4번째 FA컵 결승행 쾌거를 이뤘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유독 FA컵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김 감독은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FA컵 우승을 경험한 유일한 축구인이다. 선수 시절 2000년 일본 생활을 마치고 전북으로 복귀한 첫 해 FA컵 우승을 이끌었다. 2011년 성남 코치 시절에도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감독으로 데뷔한 2015년, 강등권 인천을 '늑대축구'라는 끈끈한 팀 컬러로 묶어내며 창단 첫 FA컵 결승행 기적을 썼다. FC서울과의 결승전에서 1대3으로 석패했지만 '김도훈 리더십'은 팬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7년 울산 부임 첫해, 김 감독은 기어이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결승에서 부산을 꺾고 환호했다. 리그 우승 2회, 컵대회 7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에 빛나는 '명가' 울산이 1983년 12월 창단 이후 처음으로 FA컵 정상에 섰다. 김 감독은 2018년에도 결승 진출 역사를 썼지만 대구 돌풍에 가로막혀 2연패를 놓쳤다. 지난해 대전코레일에 일격을 당하며 32강에서 탈락했던 울산은 이날 준결승 혈투끝에 난적 포항을 잡았다. 지난해 리그 최종전에서 뼈아픈 패배로 다 잡은 우승 꿈을 앗아간 '얄미운 이웃' 포항을 넘은 쾌거라 의미가 남달랐다. 김 감독은 감독 통산 4번째 결승행 위업을 이뤘다.
울산은 이날 구스타보의 골(전반 10분)에 힘입어 성남FC를 1대0으로 꺾고 결승에 오른 전북 현대와 11월 4일(홈)-7일(원정) 펼쳐질 결승 1-2차전에서 통산 2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15년만의 리그 우승과 함께 3년만의 FA컵 우승, 찬란한 더블의 꿈을 이어가게 됐다. 전북은 2013년 이후 7년만에 FA컵 결승에 진출해 2005년 이후 15년만이자 통산 4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FA컵 징크스를 씻어내며 전북 역시 구단 역사상 최초 '국내대회 더블'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올 시즌 K리그1, FA컵 패권은 모두 울산 VS 전북, '현대가 더비'에서 결정된다. 바야흐로 '절대 2강'의 시대다. 울산=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