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대전 하나시티즌은 올 시즌 가장 주목받는 팀이었다.
배고픈 시민구단이었던 대전은 지난해 11월 전격적으로 하나금융그룹에 인수됐다. 한국축구계는 금융단 축구단의 부활에 환호했다. 금융단 축구팀은 그동안 한국축구의 지형을 바꿔왔다. 아마추어에 머물던 한국축구를 프로 형태로 바꾸며, 선수들이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1983년 프로축구가 출범하기 전까지 한국축구의 젖줄 역할을 톡톡히 했다.
30년만에 다시 열린 금융단 축구팀의 시대, 화려한 창단식과 함께 문을 연 대전은 기대에 어울리는 행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프런트를 새롭게 정비하고, '자생화'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이어갔다. 역시 가장 눈길을 모은 것은 선수단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웅이자 K리그 역사상 첫 더블을 달성한 황선홍 감독을 초대 감독으로 선임하고, 김동준 박용지 이웅희 서영재 등 수준급 국내 선수들에 안드레 루이스, 에디뉴, 바이오, 채프만 같은 특급 외인들을 더하며 화려한 스쿼드를 만들었다. 'K리그1 급 전력'이라는 분석 속 '올 시즌 승격 1순위'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 기대와는 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평가와 달리 시즌 내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력을 이어가며, '선두' 제주 유나이티드(승점 35)에 승점 5점 뒤진 3위(승점 30)를 달리고 있다. 플레이오프 진출권이기는 하지만, 시즌 전 예상과 비교하면 분명 아쉬운 성적표다. 그 사이 구단 안팎에서 여러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결국 황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스포츠조선 8일 단독보도> 황 감독과 대전은 남은 계약을 해지하는 것으로 상호 합의를 마쳤다.
황 감독의 사퇴는 단순한 감독 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앞서 언급한대로 황 감독은 새 출발하는 대전의 초대 감독이었다. 초대 감독은 신생팀의 얼굴이다. 팀의 비전을 설정하고 방향을 이끈다. 그래서 초대 감독으로 거물 혹은 새 인물로 택하는 경우가 많다. 감독이 파리목숨에 비유되기는 하지만, 초대 감독만큼은 비교적 많은 시간을 보장 받고, 실제로 보장 해준다. 하지만 대전은 칼을 빼들었다. 승격을 위해서라고 하나, K리그 역사상 1년도 되지 않아 물러난 초대 감독은 두명 밖에 없다. 아무리 황 감독의 선택이었다고 해도, 대전 구단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후임 감독이 중요하다. 감독이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는 것은 지난 8개월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항간에 여러 이유가 떠다니고 있지만, 이는 중요치 않다. 진짜 대전이 고민해야 할 것은 '다음 스텝'이다. 첫 발을 잘못 내딛었다면, 그 방향을 다시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줄, 그런 강단 있고, 능력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단순히 승격을 시킬 수 있느냐 여부가 우선시 되면 안된다.
벌써부터 여러 인물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거론되는 감독마다 능력 보다는 누구 측근, 지인이라는 이야기가 돈다. 그런 감독으로는 안된다. K리그를 넘어 아시아의 명문 구단으로 도약을 꿈꾸는 대전은 지금 어쩌면 구단의 역사를 좌우할 중요한 기로 앞에 서 있는지 모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