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두산 외야수 김인태(26). 백업만 하기에는 참 아까운 선수다.
공-수에 걸쳐 주전을 할 만한 알토란 같은 실력의 소유자. 그런데 하필 소속팀이 최강 두산이다.
김재환-정수빈-박건우로 이어지는 두산의 화려한 외야 라인업.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김인태의 가치는 보이는 수치 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대타로 살아간다는 것. 당사자에겐 남 모를 고충의 연속이다. 벤치에서 굳은 몸으로 소리를 지르다 급히 몸을 풀고 타석에 서야 한다. 대부분 경기 후반 중요한 순간, 두번 기회는 없다.
매번 생소한 상대 투수와의 딱 한번 승부. 이겨내야 '다음'이 있다. 고개 숙이고 들어 오면 공백은 길어진다.
힘든 역할 상황 속에서도 김인태는 늘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 만의 가치를 스스로 창출해 냈다. 지난해 시즌 1위 여부가 걸린 NC와의 최종전. 김인태는 8회 대타로 출전, 동점 적시 3루타를 날렸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는 9회말 대타로 나서 천금 같은 동점 희생플라이를 날렸다.
빼어난 타격 솜씨에 심한 압박감을 이겨낼 만큼 두둑한 배짱까지 갖춘 선수임을 인증한 순간이었다.
야심차게 맞이한 올 시즌, 출발이 좋지 못했다. 첫 안타 신고가 꽤 많이 늦었다. 대타로 나와 잘 맞은 타구가 하나둘씩 잡히면서 조바심이 났다. 찬스가 줄었다.
"감은 썩 나쁘지 않았는데 잘 맞은 타구 2,3개가 잡히면서 안타 안 나오니까 조급했던 거 같아요. 2군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첫 안타 나오고) 막힌 게 뻥 뚫린 느낌이었어요. 코치님과 형들이 '생각 많이 하지 말고 편안하게 하라'고 조언해주신 게 도움이 됐습니다."
지난 30일 잠실 롯데전 11회에 선두타자로 나가 13경기, 14타석 만에 안타를 신고한 뒤 인터뷰에서 던진 말. 이 첫 안타가 11회 연장 승부에 종지부를 찍는 결승 득점으로 이어졌다.
지난 2013년 천안 북일고를 졸업한 김인태는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두산에 지명된 특급 유망주였다. 힘찬 스윙과 강한 어깨, 빠른 발을 두루 갖춘 미래의 주전 외야수. 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했지만 약속된 '미래'는 아직 현실이 되지 못했다. 주전 멤버와 뎁스가 두터운 두산이라는 환경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
행여 억울한 마음은 없었을까. 두산이 아닌 다른 팀이었다면 그의 위치는 달라졌을까. 잠시 생각하던 김인태는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것이 다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어디서든 똑같이 경쟁해야 하는 거겠죠. 저는 오히려 우리 팀 외야에 좋은 형들 3명이 있어서 옆에서 보고 배우는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팀 가서 기회를 보는 것 보다 지금 여기 두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현실이 될 주전 외야수의 꿈. 진짜 기회가 왔을 때 절대 놓치지 않을 내일을 위해 김인태는 오늘을 산다. 늘 긍정적 마인드와 패기 넘치는 실력파 외야수. 그는 이런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를 했다.
"저는 타석에서 주저주저 하는 걸 싫어합니다. 제 타이밍에 늦지 않게 제 스윙을 하려고 해요. 막혔던 안타가 나왔으니 이제 더 자신 있게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매일 선발 라인업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