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베테랑 내야수 정근우(38). 26일 대전구장에서 환한 미소로 몸을 푸는 그는 자주 그라운드 이곳 저곳을 돌아봤다. 수백번 넘게 봐온 낯익은 풍경. 지난해 2차 드래프트 명단에 '정근우가 풀렸다'는 소문이 돌자 많은 이들이 놀랐다. 한화 이글스 구단의 리빌딩 기조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역대 레전드 2루수 중 톱급이라는 정근우 아닌가.
LG로 이적한 뒤 다시 '8번'을 단 그는 수십년 LG에서 뛰어온 선수마냥 트윈스 유니폼이 잘 어울렸다. 접착제처럼 동료들과도 척척 붙는다. 26일 한화전은 정근우의 이적 후 첫 대전 공식방문이었다. 정근우는 팀이 1-0으로 앞선 6회초 좌중월 1점홈런(125m)을 터뜨렸다. 올시즌 정주현과 플래툰으로 2루를 번갈아 맡았던 그다. 이날은 한화 외국인 좌완 채드벨을 겨냥해 6번 지명타자로 나섰다.
시즌 16경기만에 1호 홈런을 때려냈지만 의미를 새길만한 아치였다. LG는 지난주까지 4연속 위닝시리즈를 챙기며 2위를 질주중이었다. 지난 24일 KT 위즈전에서는 3회말 논란의 태그업 오심으로 분위기가 다운될 뻔했지만 로베르토 라모스의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기세를 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태그업으로 더그아웃에 기를 불어넣었던 선수도 정근우였다.
LG는 경기 초반 채드벨의 구위에 밀리며 이렇다할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답답함을 라모스가 뚫어냈고, 정근우가 추가점으로 마운드 부담을 덜어냈다.
이날 한화 라인업에는 1번 정은원의 이름이 선명했다. 정근우를 밀어내고 이글스 2루를 차지한 신예. 정근우는 쿨하게 인정했다. 18살 어린 후배의 성장에 박수를 보낼 뿐이었다. 선의의 경쟁에서 밀리면 그게 전부다.
정근우는 한화를 떠나면서도 "팬들께 죄송하고, 많은 기회를 부여해준 한용덕 감독께도 죄송하다"고 했다. 새롭게 LG에 합류해서는 입에 단내가 나도록 달리고 또 달린다. 이것이 프로라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대전구장에 팬들이 가득했더라면 타석에 선 정근우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정근우 역시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을 것이다. TV로 경기를 지켜본 LG팬들은 정근우의 홈런에 환호를, 한화팬들은 수년전 대전구장에 울려 퍼졌던 '이글스의 정근우, 이글스의 정근우~ 우~ 우~'응원가를 떠올렸을지도.
대전=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