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다시 떠올리기 싫은 장면이다.
롯데 자이언츠 투수 이승헌(22)이 17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 도중 타구에 머리를 맞았다. 더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충남대병원으로 급히 후송된 이승헌은 검진 결과 두부 미세골절 및 미세출혈 진단을 받았다. 롯데는 이승헌을 현지에 입원조치했고, 경과에 따라 연고지인 부산 이송 일정을 잡을 계획이다.
롯데 내야수 한동희(21)는 이 장면을 누구보다 착잡하게 바라본 듯 하다.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 한동희는 3회초 1사후 김회성의 평범한 땅볼 타구를 1루로 던졌지만, 송구 실책이 되면서 내야 안타의 빌미를 제공했다. 앞서 7타자를 삼진, 범타 처리한 이승헌의 첫 출루 허용이기도 했다. 이날 깜짝 1군 등판한 이승헌은 첫 주자 출루 후 정진혁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줬다. 정진호에게도 초구 스트라이크 후 잇달아 볼 세 개를 던졌다. 그후 던진 공이 부상으로 연결됐다. 한동희에겐 과정을 곱씹을수록 '내탓'이란 단어를 떠올릴 만했다.
이날 경기 내내 한동희는 잔뜩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타격, 수비 모두 정상적으로 소화했지만,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9회초엔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는 동점 솔로포를 쳤지만, 더그아웃에서 동료들의 환호를 뒤로 한 채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승헌이 경기장을 떠난 뒤 '만약에', '내가 더 잘했더라면'이라는 문구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자책했을 그의 마음을 헤아리기 충분한 장면이었다.
롯데가 이날 연장 11회말 접전 끝에 4대5로 패한 뒤, 일부 네티즌 위주로 한동희를 향한 도넘은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동희의 실책이 없었다면 이승헌의 투구 역시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고, 부상도 피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게 요지다.
과연 한동희가 실책을 범하지 않았다면 이승헌은 부상을 피할 수 있었을까. 야구에 '만약'이란 단어는 없다. 한동희의 실책과 이승헌의 부상을 연관짓는 것도 결국 결과론에 기반한 가정일 뿐이다. 이승헌의 부상은 결코 나와선 안되지만, 경기이기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불운일 뿐이다.
한동희는 심적으로 무너질수도 있었던 장면에서 마음의 짐을 안고도 최선을 다한 어린 선수일 뿐이다. 과연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