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현장에서]야구가 시작된 날, 꽁꽁 얼어붙었던 대구에 봄날이 찾아왔다

by

[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지난 3월 초. 오키나와에서 캠프를 연장하려던 삼성은 일본의 갑작스러운 입국 제한 조치에 급거 귀국했다.

대구로 돌아왔지만 막막했다.

대구 경북 지역 사회에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점. 오갈 데가 없어졌다. 코로나19를 피해 대구 밖 훈련지를 물색했다. 하지만 삼성 선수단에 경기장을 선뜻 빌려줄 타 지역 지자체는 전무했다.

실전 감각도 문제였다. 경기가 필요했던 시기. 수도권 팀들 간 연습 경기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삼성은 불가능 했다. 타 팀과의 경기는 언감생심이었다. 대구 연고 팀과 경기를 선뜻 하려는 남쪽 지역 팀은 없었다. 그나마 당국의 불허로 전체 연습경기가 불가능해진 것이 다행이었다. 자칫 삼성만 '나 홀로' 훈련을 해야할 뻔 했다.

이도저도 막힌 삼성의 선택지는 하나, 홈 구장인 라이온즈파크 내 고립 훈련 뿐이었다. 그나마 번화한 시내에서 벗어나 녹지에 둘러쌓인 라이온즈파크는 지역 사회로부터의 분리가 가능했다. 구단 자체적으로 철저한 방역과 출입 제한으로 감염 위험을 차단했다. 우려 속에 출발한지 한달여,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선수단 전체의 단합된 노력 속에 결국 감염자 없이 무사히 훈련과 청백전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5월5일, 코로나19로 가장 많이 고통을 받았던 도시, 대구에서 개막전이 열렸다. 그 어떤 다른 지역에 비해 뜻 깊은 하루였다. 대구 개막전이 어떤 의미인지 삼성은 잘 알고 있었다. 지역 사회의 단합된 힘으로 끝이 보이지 않던 코로나19를 극복했다. 그 바탕에는 불철주야 환자를 돌본 의료진의 헌신이 있었다. 눈물의 호소문으로 전국 각지의 의료 지원을 이끌어낸 이성구 대구시 의사협회장을 개막전 시구자로 선정한 것은 가장 의미 있는 초대였다.

이성구 협회장은 시구를 마친 뒤 인터뷰에서 "대구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코로나19 극복의 힘이 됐다. 자발적으로 사회격리 수칙을 잘 지키고 인내해주신 덕분이다. 대구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자부심을 느끼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의 야구 개막전은 바로 대구 시민 전체의 합심된 노력 덕분이었다.

개막전을 통해 데뷔전을 치른 허삼영 감독은 "코로나19로 힘든 대구 경북 분들께 희망과 기쁨을 동시에 전달하고 싶다. 선수단이 똘똘 뭉쳐 야구의 본질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지역 팬들을 위한 투혼을 다짐했다.

고참 이원석은 "시민 여러분께서 잘 지켜주신 덕에 빠르게 개막전을 할 수 있었다. 팬 여러 분의 함성 속에 다시 야구를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 경북민과 의료진, 그리고 선수단 노력의 총체적 결실이 바로 대구 개막전이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하루. 비록 텅 빈 관중석에 어린이 날을 맞아 '어린이 여러분의 꿈과 희망을 응원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치른 경기였지만 진심이 전달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대구에서 야구가 시작됐다. 야구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아주 특별한 날. 다시 시작된 '플레이 볼'과 함께 겨울 시련을 견뎌낸 대구에도 봄날이 찾아왔다.

대구=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