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스포츠조선 덕분에 이런 첫 경험도 해보네요."
서장훈(46)은 안정환(44)과 공동 인터뷰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무척 반겼다. 방송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 적은 있어도 별도 인터뷰를 위해 뭉친 건 '첫 경험'이란다.
영원한 '국보센터' 서장훈과 '반지의 제왕' 안정환은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 전성시대를 주도하는 양대산맥이다. 요즘 말로 가장 '핫'한 '찐'예능대세라는 데 이견이 없다.
워낙 '귀하신 몸'인 데다 빡빡한 스케줄로 두 스타를 동시에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스포츠조선은 창간 30주년을 맞아 두 '거목'을 어렵게 한자리에 초대했다. 함께 인터뷰하고 싶은 인물로 서로를 지목한 덕분에 공동 인터뷰가 성사됐다.
둘은 서로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함께 진행 중인 MBC '편애중계'의 빠듯한 녹화 시간을 쪼갰다. 경기도 파주의 한 카페 녹화현장에서 진행된 인터뷰, 둘은 방송계 양대산맥 '라이벌'이 아니었다. 서로 공동 인터뷰를 추천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친형제도 부러워 할 만큼 진한 선후배의 우정이 배어났다.
현재 주 무대는 예능방송이지만 천생 스포츠인의 피를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두 스타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방송과 스포츠를 자유롭게 오가며 스포츠 스타 출신 방송인의 삶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나갔다. 특유의 익살스런 입담으로 주거니 받거니 때로는 아옹다옹, 그 남자들의 유쾌한 '수다'였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서장훈과 안정환은 겉보기에 '까칠해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는 편이다. 방송을 하면서 친근도가 높아졌지만 선수 시절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던 이미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둘은 서로의 성격에 대해 '쉽지 않은 스타일'이라고 '쿨'하게 인정하면서 선후배를 넘어 '절친선후배'가 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방송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둘은 농구-축구 영역이 달랐기에 얼굴만 아는 정도였다. 서장훈은 "대학 시절 유니버시아드대회에 대표 선수로 함께 참가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주 만나고 그런 사이는 아니었죠"라며 "2016년 '꽃놀이패' 프로그램을 같이 하며 1년 넘게 여행을 다니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어요"라고 말했다.
안정환은 "유니버시아드대회 때 장훈형은 벌써 농구대잔치 대스타였고, 저는 그냥 대학 선수였으니 감히 바라보기 힘들었죠"라며 "'꽃놀이패' 방송 때 한 번에 2박3일씩 촬영을 하니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라고 거들었다. 방송 출연 차 오랜 시간 함께 보낸다고 누구나 친해질 수 없는 법. 서로 '급호감'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았다.
-'이 사람 괜찮은 사람이네' 하고 느꼈던 계기가 있나요.
서(장훈)=안정환이란 선수는 2002년 월드컵뿐 아니라 그 전부터 외모로 보나 신비감이 있었잖아요. 과거에는 정환이가 말이 많지 않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죠. 근데 방송하면서 만나보니까 묘한 매력이 있는거예요. 지금 시청자들이 안정환에게 느끼는 매력 그런 겁니다. 한 번 친해지면 털털하고 따뜻한 좋은 사람이라는거. 예전에는 다가가기 어려운 스타같았다면, 겪어 본 안정환은 옆집 아저씨처럼 털털한 매력이 있습니다.
안(정환)=대학 시절 장훈형은 운동 선배이기도 하고 이미 농구 스타였기 때문에 저에게는 무척 높은 벽이었다고 할까. 방송하면서 친해지고 소주도 한 잔 해 보니까 이렇게 여린 사람이 또 없더라구요. 남들이 보기엔 강하고 성질 더러울 것 같아 보이지만 전혀 아니거든요. 주위에서 오해하는 것과 달리 상당히 여리고 순수한 사람이예요. 집에서 혼자 울기도 많이 한 것 같은데. 촬영장에서 리더십, 배려심도 많아요.
-서로 칭찬하는데 바쁘시네요.
서=2002년 월드컵은 건국 이래 최고 이벤트잖아요. 많은 종목 중에서 그렇게 큰 즐거움을 준 선수가 안정환입니다. 선수로서 커리어로 보면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지금은 은퇴해서 살도 좀 찌고, 푸근한 아저씨같은 이미지로 방송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타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가….
안=장훈형은 운동할 때나 지금 방송할 때나 변하지 않았어요. '이 사람 진국이다'라고 느끼게 해주죠. 인성적으로도 장훈형을 높게 평가하고 존경할 수밖에 없어요.
-서장훈은 평생 혼자 살 것인지 팬들이 궁금해 하는데.
서=좋은 사람이 생기면 저도 결혼할 생각은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님 나이 들어가시는 걸 보니 죄송한 마음이 크기도 하구요.
#이때 안정환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거들었다. '먹잇감' 포착에 능한 공격수 해결사 출신다웠다.
안=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노래를 못해서 축가는 힘들지만 음식 나르고 청첩장 돌리는 일 등 형이 하라는 거 다 할 수 있어요. 모르죠, 또 장훈형이 애를 낳아서 조카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때는 또 돌잔치 진행을 해도 되고, 돌잡이도 도와주고…, 뭐든지 할게요.
#이번엔 리바운드의 제왕 서장훈이 '잽싸게' 말을 받는다.
서=오호∼, 정환이 뜻이 그렇단 말이지? 정환이가 정말 떡 나르는지 보기 위해서라도 좋은 사람 생기면 좋겠네요.
▶방송인의 삶? 늘 꽃놀이패는 아냐
#'절친선후배'라서 그런지 스트레스 해소법도 같았다. 바쁜 방송 생활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냐고 물었더니 나온 대답은 똑같이 '방콕'. 서장훈은 "원래 돌아다니지 않는 성격이라 집에서 아이스크림 한 통 끼고 앉아서 영화나 드라마 보는 게 가장 편한 시간"이라고 답했다. 안정환은 "예전에는 장훈형이랑 삼겹살에 소주 마시는 게 '낙'이었는데 요즘은 나이 먹으니까 술 먹는 게 힘들어요. 방송으로 인해 더 알려지다 보니 여러모로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집에서 가만 누워있는 게 제일 편해요"라고 말했다.
-방송 활동에 회의감을 느낀 적은 있나요.
서=일단 많은 분들이 관심주시니 감사하죠. 그런데 가끔은 '내가 은퇴하고 원래 조용한 삶을 살기로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선수 시절보다 더 많이 알아보시고 관심주시니까 내 개인적인 삶이 너무 사라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어요.
안=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을 때,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곡해되거나 그럴 때는 굉장히 마음 아프죠. 운동의 세계나 방송의 세계나 다 비슷하더라구요. 감수해야죠.
-이왕 예능대세가 됐는데 방송인으로서 큰상을 받고 싶은 꿈은?
서=아이고, 전혀. 어릴 때부터 선수로서 상은 수없이 받았기 때문에 다른 상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제가 함부로 그런 상을 받는다는 게 말이 안되기도 하고. 예능을 하는 전문 방송인이 많은데 그분들이 받아야 의미있는 것이지요.
안=형, 근데 방송 오래 하다보면 그땐 모르지 않나? 하하하. 저도 방송대상에 대한 욕심은 정말 '1'도 없습니다.
-독자 질문인데요. 방송에서 각각 감독을 맡고 있는데 자신에게 몇점을 주고 싶은지?
서=빵(0)점이죠. '핸섬타이거즈' 방송을 하면서 저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은퇴하고 팀을 지도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래요. '아, 내가 선수할 때는 이런 것을 놓쳤었구나'하며 늘 배우게 됩니다.
안=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뭉쳐야 찬다' 출연진분들은 축구를 모르고, 제가 아는 건 축구니까 그냥 알려드리면서 함께 성장하고 배우고 있어요. 장훈형이나 저나 경험이 없기 때문에….
-공교롭게도 인터뷰 직전에 각각 첫승을 하셨네요.
서=힘들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게 너무 많아요. 변수도 많고…. 농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승부욕은 감출 수 없더라구요.
안='뭉찬'은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는데 점점 패하다 보니까 스포츠 레전드 선·후배들도 느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각자 뒤늦게 정신차리신 게 아닌가….(웃음) 장훈형도 그렇고, 자신이 해왔던 종목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
▶'스포츠인 DNA 어디가나요?'
#선수 시절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고 은퇴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선수'를 그리워했다. 선수-감독-방송인 중에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이구동성으로 선수가 최고라고 입을 모았다. 각각 '핸섬', '뭉찬' 같은 종목 관련 예능 프로그램에 애정을 쏟는 것도 농구-축구인 출신으로서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방송에서 감독을 하는데 현장에서 진짜 감독을 할 생각은?
서=모든 은퇴 선수가 내 팀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요. 근데 그게 꼭 나여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나중에 만약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으나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핸섬' 감독 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프로팀 감독을 하는 게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인가?' 생각하면 아닌 것 같기도 하구요.
안=저는 계속 공부하고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축구해설을 하고 있고 축구 트렌드도 변하고 있으니 흐름에 맞추려면 공부가 필요해요. 그런데 감독이라는 건 하늘이 정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요.
-지금의 프로무대에 복귀한다면 또 레전드가 될 자신있나요?
서=아, 이거 내입으로 애기하기 힘든데…. / 안=그럼 제가 먼저 얘기할게요. 저는 자신있어요. 운동 환경이 이렇게 좋아질지 몰랐어요. 제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그때보다 너무 좋아졌다', 그런 아쉬움이 있죠.
서=저는 이렇게 정리할게요. / 안=형, 내말이랑 똑같잖아. / 서=제가 남겼던 기록보다 더 넣지 않았을까. / 안=이야∼, 그게 더 무서운 말이야.
-현역 중에 같이 뛰면 좋을 것 같은 선수가 있나요.
안=저는 오히려 예전에 같이 뛰었던 선배들과 다시 하고 싶어요. 지금 선수들이 못한다는 게 아니라 그때 선수들과 함께 했던 정신을 가지고 지금 환경에서 뛰면 더 좋은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손흥민 등 훌륭한 후배들이 많이 있지만 내가 모시던 선배들이 더 훌륭하다는 생각입니다.
서=양동근(현대모비스)을 가장 좋아합니다. 현재 한국농구 현실에서 후배들이 보고 따라야 할 선수죠. 같은 팀에서 뛰었다면 양동근에게 도움을 더 받지 않았을까. / 안=아니, 그러면 그동안 같이 뛰었던 선수 중에는 도움받은 선수가 없었다? / 서=하하하, 아니 그런 게 아니고. 현역 선수 중에 같이 뛰고 싶은 선수는 양동근이다 그런거지. 물론 양동근도 노장이 됐지만 양동근처럼 수비, 궂은일까지 다 하는 정신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 이걸 후배들이 배워야하는데. 그런 선수가 많지 않아 문제지.
#끝으로 서장훈과 안정환은 10년 뒤 자신들의 모습에 대해 "무엇을 하든, 어느 위치에 있든 지금처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국민들께 즐거움을 드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께 응원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서장훈은 "우리 민족이 어느 민족보다 근성있고, 어려울 때 똘똘 뭉치는 기질을 갖고 있잖아요. 이번 어려움도 대한민국 근성으로 충분히 이겨낼 것이라 믿습니다"라고 했다. 안정환은 "대한민국은 잘 뭉치잖아요. 다시 '원팀'이 되면 충분히 극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라며 2002년 한-일월드컵 때의 '대∼한민국'을 떠올렸다. 파주=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