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레전드를 대체하기란 쉽지 않다. 데이비드 모예스와 우나이 에메리는 아마도 이 말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
폴란드 출신 골키퍼 보이치에흐 슈쳉스니(29·유벤투스)가 그 어려운 걸 해내고 있다. 현재 그는 이탈리아 세리에A 최고의 클럽 유벤투스의 주전 수문장이다. 그의 뒤에서 벤치대기하는 선수는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이자 유벤투스 레전드인 잔루이지 부폰(42)이다. 어쩌다 한 시즌 레전드의 빈자리를 그럭저럭 잘 메우는 수준을 넘었다. 3시즌째 유벤투스 주력 골키퍼로 활약 중이다. 부폰이 파리 생제르맹으로 '유학'을 떠난 지난시즌부턴 등번호 1번을 달았다. 지난 14일, 2024년까지 계약기간을 연장했다. 구단이 슈쳉스니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는지 엿볼 수 있다.
슈쳉스니가 2015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떠날 때만 하더라도 아스널 관계자와 팬들은 5년 뒤 일어날 일을 예상치 못했을 거다. 아스널 유스팀에서 성장해 2009년 아스널 1군에 데뷔한 슈쳉스니는 아르센 벵거 전 아스널 감독으로부터 "골키퍼의 모든 자질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종종 큰 경기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며 서서히 신뢰를 잃어갔다. 2014년 다비드 오스피나 영입으로 입지가 위협받았다. 2015년, 첼시에서 뛰던 베테랑 페트르 체흐 영입은 결정타였다. 아스널 말년에 성적 압박을 받던 벵거 감독은 우승을 위해 체흐에게 골문을 맡기길 원했다.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어쨌든.
아스널 구단 수뇌부는 만약 슈쳉스니가 'AS로마 2시즌 임대를 거쳐 2017년 완전이적한 유벤투스에서 2시즌 연속 스쿠데토를 차지하고 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부상한다'는 시나리오를 예상했더라면 1천만 파운드(현재환율 기준, 약 154억원)라는 저가 이적료에 넘기진 않았을 것이다. 이 금액은 2018년 여름 이뤄진 알리송(로마→리버풀)과 케파 아리사발라가(빌바오→첼시) 이적료의 약 1/7에 불과하다. 케파는 현재 '가장 비싼 골키퍼'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부진하다.
반대로 유벤투스는 단돈(?) 1천만 파운드로 부폰의 대체자를 구한 셈이 됐다. 공교롭게 2001년부터 2018년까지 골키퍼 최고 이적료를 보유한 팀이 유벤투스다. 2001년 여름 5200만 유로(약 667억원)의 이적료로 파르마에서 뛰던 부폰을 영입했다. 골키퍼에게 큰돈을 쓰지 않는 풍토 속에서 당시엔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부폰은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골문 앞 압도적인 존재감과 모범적인 생활로 유벤투스 레전드로 거듭났다.
슈쳉스니는 지난해 이탈리아 매체 '투토 스포르트'와의 인터뷰에서 "지지 부폰이 내 백업이라니, 기분이 묘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시나리오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웃었다. 현재 시장가치 3천600만 파운드(약 555억원/골키퍼 11위/트랜스퍼마르크트 자료)로 평가받는 슈쳉스니는 "(2024년까지)모든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도 밝혔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