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선두를 달리는 FC바르셀로나가 후반기 개막을 앞두고 감독교체를 전격 단행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바르셀로나는 13일 에르네스토 발베르데(55) 감독 경질과 동시에 후임 키케 세티엔(61) 전 레알 베티스 감독 선임을 발표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2019~2020시즌 스페인 슈퍼컵 준결승에서 2대3으로 패해 탈락한 뒤 나흘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발베르데 감독이 바르셀로나의 2시즌 연속 라리가 우승을 이끌고, 올시즌에도 라리가 19라운드 현재 선두에 올라있는 상황이어서 얼핏 깜짝 교체로 비춰진다.
하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발베르데 감독의 경질이 예견된 수순이라고 말한다. 지난 5월 유럽 챔피언스리그 리버풀 원정에서 역사에 남을 '참사'를 당한 시점부터 수뇌부 및 팬들과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르셀로나는 이전 시즌(2017~2018)에도 챔피언스리그에서 AS로마에 뒤집기 패배를 당한 경험이 있다. 또한 지난시즌 발렌시아와의 코파 델레이 결승과 이번 슈퍼컵 준결승과 같이 중요한 경기를 계속해서 놓치면서 신뢰를 잃어갔다. 발베르데 감독은 '바르셀로나답지 않은 전술을 고집한다'는 이유로 대다수 팬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던 처지이기도 했다.
당초 바르셀로나 레전드 출신 사비 에르난데스(39) 현 알사드 감독의 선임이 유력해 보였다. 사비 감독이 최근 바르셀로나 수뇌부와 미팅을 가졌다는 사실이 인터뷰를 통해 알려지면서다. 곧이어 사비 감독이 바르셀로나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스페인 보도가 쏟아졌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47) 전 토트넘 홋스퍼 감독의 이름도 오르내렸지만, 바르셀로나는 세티엔 신임감독에게 2022년 6월까지 지휘봉을 맡기기로 했다.
현지에선 바르셀로나와 세티엔 감독의 만남이 '필연'이라는 반응이다. 전 세계 어느 팀보다 '바르셀로나 DNA'를 중시하는 구단은 '패스'와 '아름다움'과 같은 키워드로 대표되는 축구로 회귀하길 바랐다. 그런 전술로 팀을 이끌기엔 바르셀로나의 전설 요안 크루이프의 축구를 동경하던 세티엔 감독 만한 인물이 없었다. 세티엔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는 팀들은 내내 공만 쫓아다녔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게 내가 원하는 축구야. 이런 팀을 만들어야겠어'"라고 말했다. 베티스의 오퍼를 받았을 때는 수뇌부에 '내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 그래도 나를 원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세티엔 감독은 이전 직장인 라스 팔마스와 레알 베티스에서 전방 압박과 빠른 템포의 패싱 축구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가장 최근 바르셀로나 홈구장인 캄누에서 승리를 거둔 적장은 다름 아닌 세티엔 감독으로, 베티스를 이끌던 2018년 11월 경기에서 4대3 승리했다. 이날 경기를 마치고 바르셀로나 미드필더 세르히오 부스케츠(31)는 자신의 유니폼을 세티엔 감독에게 선물했다. 유니폼 후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당신의 축구에 경의를 표합니다.'
세티엔 감독은 펩 과르디올라(48) 현 맨시티 감독이 바르셀로나를 이끌던 때에 과르디올라 감독의 초대를 받아 바르셀로나 '절대지존' 리오넬 메시(32)의 훈련 장면을 지켜본 적이 있다. 그는 '엘 파이스'와의 인터뷰에서 "메시에게 다가가 '60살이 될 때까지, 아니 내가 죽을 때까지 뛰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메시가 은퇴하는 날 눈물이 나올 것 같다"며 메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던 세티엔 감독은 61세의 나이로 크루이프의 영혼이 깃든 바르셀로나 벤치에 앉게 되었다. 그에게 내려진 임무는 '바르셀로나다운 축구'와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