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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무대에 되살아난 80년대 홍콩 느와르의 전설, 뮤지컬 '영웅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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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발 장국영 주연의 영화 '영웅본색'이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굉장히 궁금했다. '198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를 뮤지컬로 어떻게 만들까?'란 반신반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한전아트센터에서 베일을 벗은 뮤지컬 '영웅본색'은 예상을 넘어선 완성도를 보여준다. 2014년 '프랑켄슈타인'으로 창작뮤지컬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뒤 '벤허'로 다시 한번 홈런을 날린 왕용범 연출-이성준 음악감독 콤비가 또다시 저력을 발휘했다.

무엇보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압도적인 영상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대 세트 대신 LED 영상을 쓰는 것이 트렌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많은 뮤지컬에서 영상이 그저 '배경그림'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허나 '영웅본색'은 달랐다. 영상을 입체적으로 배치해 공간감을 극대화했고, 실제 세트 또는 소품과 어우러지게(개폐가 가능한 문, 천정에서 내려오는 샹들리에 등) 아이디어를 구사해 LED영상을 드라마 안으로 끌어당겼다. 증강현실의 느낌마저 나는 홍콩 야경과 항구, 부두, 연회장 등에서는 느와르 장르의 화려한 세속성과 스산함이 살아났고, 수족관과 밤하늘 등에서는 캐릭터의 내면이 드러났다. 영상을 연출의 영역으로 제대로 품어냈다.

영화 속 자걸 역의 장국영이 불러 히트한 '당년정', '분향미래일자' 등 아름다운 넘버들과 원작 OST를 편곡했고, 새 곡들을 추가해 완성한 음악 역시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룬다. 영상과 음악에서 세련미를 갖추니 옛날 작품의 냄새가 대번에 사라졌다.

드라마에서는 자호(유준상 임태경민우혁)가 중심을 잡는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원작에서는 마크(주윤발)와 자호의 동생인 자걸(장국영)이 멋진 외모와 제스처를 앞세워 인기몰이를 했지만 뮤지컬에서는 사건의 연결고리가 되는 자호의 딜레마를 부각시켰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자호 역을 맡은 임태경의 안정된 연기와 열창은 큰 박수를 이끈다.

다이나믹하고 아기자기한 안무 역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드라마의 완급조절에 큰 역할을 한다. 덕분에 세 주인공들 못지않게 호반장 역의 이정수, 정비소 사장 견숙 역의 문성혁 등 조연들의 존재감도 살아났다. 조연들까지 눈에 뜨인다는 것은 드라마가 유기적으로 잘 흘러간다는 뜻이다.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은 암흑가를 배경으로 우정과 의리, 배신, 복수의 테마를 담은 작품이다. 프란시스 F. 코폴라 감독의 '대부'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계보를 잇는 느와르의 걸작임은 분명하나 오래된 작품인데다 '남성용 판타지'라는 한계가 있다.

뮤지컬의 주 관객층은 젊은 여성들이다. 왕용범 이성준 콤비는 현실에 용감하게 도전했고, 고색창연한 80년대 영화를 2020년의 감성에 맞는 뮤지컬로 재탄생시켰다. 뮤지컬은 역시 콤비의 예술이다.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