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참, 부담스럽네요…."
경기를 마친 황인범(23·밴쿠버)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황인범은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공 예쁘게 차는', '재능 많은 선수'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잠재력을 뽐내며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뒤이어 파울루 벤투 감독의 부름을 받고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활동량과 센스. 합격점을 받았다. 그는 벤투호의 플랜A인 4-1-3-2 포메이션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팀의 핵심으로 뛰었다. 불과 1년 사이에 A매치 20경기를 소화했다. 황인범의 이름 앞에는 '벤투호의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기류가 바뀌었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이었다. 황인범은 투르크메니스탄, 북한, 레바논전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벤투호 역시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자연스레 황인범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황인범 관련 기사에는 부정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11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중국의 2019년 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직전까지도 그랬다. 선발 명단 공개 직후 댓글에는 '황인범 선발 뭔가', '황인범 참 아니다' 등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그를 향했던 부정적 시선. 하지만 황인범은 90분 뒤 비판을 칭찬으로 돌려 세웠다. 황인범은 이날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2대0 승리에 힘을 보탰다. 아니,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승리의 1등 공신이 됐다. 그는 환상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터뜨렸고, 날카로운 크로스로 추가골에 관여했다.
경기 뒤 황인범은 "(나에 대한 비판은) 일부가 아닌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힘들다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내가 이것을 잘 이겨내면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낮은 자세로 늘 잘 준비하고 있다. (대중의 평가가) 기준이 되지는 않겠지만,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 선수가 좋은 선수라는 생각을 한다. 팬들께 인정받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은퇴할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동갑내기 룸메이트' 나상호(23·FC도쿄)도 황인범의 활약에 활짝 웃었다. 나상호는 "(황)인범이와 방을 함께 쓰고 있다. 룸메이트끼리 골을 넣어서 기분이 좋다. 앞으로 소통을 잘해서 남은 두 경기에서도 보여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상호는 이날 세트피스 상황에서 깜짝 헤딩으로 추가골을 꽂아 넣었다.
사실 나상호 역시 최근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대표팀에서 제대로 보여준 것이 없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왔다. 나상호 역시 자신을 향한 시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선수들끼리 잘 이겨내야 한다고 서로 힘을 주고 있다. 채찍질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불과 1년 사이에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두 선수. 하지만 이들이 어둠의 터널에서 빛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옆에서 지탱해주는 친구 덕이다. 나상호는 "힘든 때일수록 옆에 있는 친구가 가장 잘 안다. 우울해할 때는 욕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잘 맞춰가고 있다"고 전했다.
황인범과 나상호 외에도 김민재(베이징 궈안) 황희찬(잘츠부르크) 등 대표팀에는 1996년생이 즐비하다. 김민재와 황희찬 역시 한때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김민재와 황희찬은 그라운드 위 건실한 경기력으로 비판을 칭찬으로 바꿨다. 이들은 자신이 가야할 길과 목표를 명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성장을 향해 꿋꿋이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부산=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