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열두 살의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은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 38년 뒤 한국 영화 100년의 역사를 뒤흔든 거장이 됐다. 2019년 스크린은 누가 뭐래도 '봉의 해'를 만든 봉준호 감독(50)이 칸을 찍고 청룡의 무대까지 사로잡았다.
1993년 단편 '백색인'으로 영화 작업을 시작, 이듬해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으로 연출한 단편 '지리멸렬'을 통해 본격적인 영화 인생 신호탄을 쏜 봉준호 감독이다. 만 31세, 2000년 첫 장편 연출작 '플란다스의 개'로 충무로에 입성한 그는 블랙 코미디와 스릴러를 섞은 장르, 평범한 사람들과 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뻔하고 평범하지 않게 풀어내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비록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에선 아쉬운 성적을 얻게 됐지만 비범한 봉준호의 세계의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초도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후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03)으로 작품성은 물론 흥행까지 성공하며 충무로 대표 감독으로 등극했고 '괴물'(06) '마더'(09) '설국열차'(13) '옥자'(17), 그리고 올해 '기생충'까지 매 작품 국내는 물론 전 세계가 폭발적인 관심과 기대를 갖는 '믿고 보는 감독'이 됐다.
이런 가운데 제작 단계부터 많은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 영화로 또 한 번 극장가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전원 백수 가족이 글로벌 IT기업 CEO 저택에 취업하면서 시작되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따라가는 가족희비극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송강호를 비롯해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등이 출연한 '기생충'은 국내에서 지난 5월 30일 개봉해 53일 만에 1000만 고지를 점령하며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두 번째 1000만 작품으로 이름값을 증명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지난달 21일 열린 제40회 청룡영화상에서 감독상을 받았고 '기생충' 이름으로 작품상(바른손이앤에이), 여우주연상(조여정), 여우조연상(이정은), 미술상(이하준)까지 무려 5관왕을 가져갔다.
특히 올해 봉준호 감독에게 청룡은 남다른 의미를 안겼다. 2013년 '설국열차'로 제34회 청룡 감독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은 당시 해외 일정으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해 '설국열차'의 제작자이자 선배 박찬욱 감독이 대리 수상을 한 바 있다. 올해 '기생충'으로 6년 만에 두 번째 감독상의 영예를 안게 됐고 또 오리지널 한국 영화로 첫 수상으로 좋은 추억을 만들게 됐다.
봉준호 감독은 스포츠조선을 통해 "정말 받고 싶었던 상이었다. 과거 '설국열차'로 청룡 감독상을 받긴 했지만 그때는 내가 참석하지 못해 박찬욱 감독이 대리 수상을 해주지 않았나? 청룡 무대에 올라 감독상을 받게 된 것은 내 데뷔 인생 최초라 더 기뻤다. 물론 청룡과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괴물' '마더'가 청룡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지만 감독상 수상이라는 게 쉽지 않더라. 개인적으로 굉장히 욕심났던 부문이었다"고 밝혔다.
'기생충'을 선택한 건 비단 청룡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5월 열린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전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은 마스터피스다.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칸에 이어 청룡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올해 최고의 영화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한국 영화 100주년, 이보다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선물을 선사한 봉준호 감독이다.
올해 열린 영화상에서 수상 릴레이를 펼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은 "내게 2019년은 특별한 해인 게 사실이다. 또 특별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도 맞다. '기생충'이란 작품은 특별히 뭔가를 해야겠다며, 더구나 상을 받아야겠다고 만든 영화가 아니었다. 20년간 늘 영화를 만들어오던 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을 하고 후반 작업을 했던 작품이다.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만든 7번째 영화다.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아 너무 기쁘지만 그것과 별개로 8번째, 9번째 영화를 향해 늘 하던 대로 평상시의 내 모습대로 뚜벅뚜벅 나아가려 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100주년이라고 특별한 마음가짐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올해가 100주년이구나!'라면서 영화를 시작하는 감독과 팀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묵묵히 다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치열하게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쉽게 만드는 영화는 없다. 다들 늘 해왔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며 "나 같은 경우는 공교롭게도 우연의 일치로 칸에서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됐다. 누구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 영화 100년에 선물이 된 것 같아 기쁘다. 앞으로 한국 영화 100년을 위해 영화 전체의 산업이 좀 더 과감하고 도전적인, 창의적인 작품을 지원하고 응원하면 더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올 것 같다. 당장은 가시밭길로 보일지 몰라도 멀리 봤을 때 질적, 양적으로 훌륭한 앞으로의 100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고무적인 한국 영화의 미래를 자신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