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심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올바른 판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입니다."
지난달 28~29일 경기도 수원공고 강당, 전날 K리그1 경남-제주전 주·부심으로 활약한 이동준 심판과 김희곤 심판이 나란히 강단에 섰다. 리그 최고의 심판들이 대한체육회와 대한축구협회(KFA), 경기도축구협회가 함께하는 2019 학생축구심판 양성 프로그램의 강사를 자청했다.
올해 처음 30개 학교에서 시작한 학생심판 교육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상상 이상이다. 프로심판, 국제심판들이 각 학교를 찾아 '심판'이라는 직업을 홍보하고, 축구 규칙과 덕목에 대한 이론과 실기교육을 병행한다. 특히 학교스포츠클럽 참여기회가 부족한 일반학생들에겐 심판 체험 및 활동 기회를 제공, 새 진로를 제시하는 '입문 코스'가 된다. 이를 통해 이웃 일본 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심판 저변을 확대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날도 '박지성, 김민재 후배' 수원공고 축구부 1학년 선수들과 심판 진로에 관심을 가진 학생 25명이 귀를 쫑긋 세웠다.
▶학생심판 1일차 이론교육
첫날은 이론 수업이었다. 이동준 심판이 먼저 축구심판의 역할과 자질을 설명했다. 주심, 부심의 준비물, 축구 경기현장에 도착해서 경기장을 점검하고, 몸을 푸는 과정을 설명했다. 심판의 자질 '양심, 인격, 신의', 심판의 요건 '강인한 체력, 공정한 판정, 확고한 신념'을 강조했다. "스포츠클럽대회 심판 보면서 옆반 친구 있다고 봐주면 돼요, 안돼요?", "심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올바른 판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입니다."
짧은 휴식후 김희곤 심판이 축구규칙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김 심판이 "선수들, 손에 맞으면 무조건 핸드볼 파울이에요?"라고 묻자 선수들이 일제히 "아니오"라고 답했다. "그런데 경기장에서 왜 손만 맞으면 손 들고 항의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선수들이 싱긋 웃었다. "내년부터 손에 맞으면 무조건 핸드볼이라고 하는데 이건 잘못된 정보다. 이 규정은 오직 공격하는 선수에게만 해당한다. 자연스럽든 부자연스럽든 공격수의 손에 맞고 골이 되면 공정치 않다는 판단이다. 이 경우 핸드볼 파울로 직접프리킥 혹은 페널티킥이 주어진다. 이 규정은 수비수에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상황별 영상자료를 바탕으로 오프사이드, 직접 프리킥, 간접 프리킥 규정에 대한 알기 쉽고 명쾌한 설명이 이어졌다. 프리킥 지점을 표시하는 배니싱 스프레이를 '칙칙' 뿌려도 보고, 손에 쥔 옐로, 레드카드를 번쩍번쩍 치켜올리는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반짝했다.
▶학생심판 2일차 실기교육
이튿날 수원공고 그라운드에서 진행된 실기교육. 이동준, 김희곤 심판과 함께 'WK리그 대표주심' 박지영 FIFA국제심판도 함께 했다. 경기장 도착 후 코너플래그, 골대 위치와 골망 등을 꼼꼼히 확인한 후 워밍업을 하는 심판의 루틴을 똑같이 따라했다. 이후 체력을 안배해 선수반, 학생반으로 나뉘어 수업이 진행됐다. 이동준 심판의 휘슬에 맞춰 수원공고 축구부 선수들이 고강도 체력훈련을 하는 새 학생들은 김희곤 심판과 함께 운동장 사이드라인으로 이동했다. 깃발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전날 이론으로 배운 오프사이드, 코너킥, 선수교체시 수신호를 실습했다. "오프사이드!", "선수 교체!", "공격자 파울!" 구령에 맞춰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깃발을 들어올렸다. "부심의 시선은 늘 그라운드 방향!", "깃발은 절도 있게!"
그라운드에선 단내 나는 체력 훈련을 마친 선수반이 '주심 실습'을 시작했다. 전속력으로 달려와 휘슬을 "삐이익~" 불며 팔을 쭉 뻗어 페널티킥을 선언하는 장면, 옐로카드를 빼드는 장면, '폼생폼사' 수원공고 선수들의 그럴싸한 동작에 이동준 심판이 엄지를 번쩍 치켜들었다.
최고의 현역 심판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축구부 선수들의 수업 만족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수원공고 풀백 남기찬군(16)은 "늘 뛰기만 해서 상세한 룰을 잘 몰랐는데 쉽게 설명해주셔서 좋았다"면서 "내년에도 이런 수업이 있다면 꼭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수원공고 센터백 김혁구군(16)은 "이론은 좀 어려웠는데 실습을 해보니 쉽게 이해됐다. 새로 배운 룰들이 경기를 뛰면서 많은 도움이 될 것같다"면서 "앞으로 심판 선생님들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 같다"며 웃었다.
평소 심판 진로에 호기심을 가졌던 일반 학생들 역시 만족감을 표했다. '체대 지망생' 김하진군(18)은 "5급 심판자격증에 관심이 있었는데 대학 가서 꼭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학년 기계과 학생 김영준군(17)은 "전공인 기계쪽 진로를 생각중이지만, 기회가 되면 취직 후 취미로 축구를 하면서 심판과정에 도전해보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심판은 머리도 써야 하고 몸도 써야 한다. 정말 힘든 직업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심판 하시는 분들 정말 대단하신 것같다"며 존경심을 표했다.
▶심판 선생님의 소망 "이 학생들 중 심판 후배 나왔으면"
지난 6월 KFA '심판과 팬의 만남-이심전심 토크콘서트' 이후 뜻있는 심판들은 현장과의 소통, 나눔에 적극 나서고 있다. KFA는 지난 12일 교육부와 스포츠 분야 진로교육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도 맺었다.
이동준 심판은 "심판들이 그동안 팬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미래 세대인 학생들과의 소통 및 진로교육은 그런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생심판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이 심판이라는 직업을 이해하고 축구 규칙과 상호존중 정신을 배운다. 이 학생들이 자라서 훗날 팬이 되고 프로선수가 되고 프로심판이 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진로적인 측면에서도 고등학생 때가 가장 좋은 시기다. 기회가 닿는 대로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나려 한다. 이 친구들 중 심판 활동하는 후배가 나온다면 정말 뜻깊을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김희곤 심판은 "심판이라는 직업을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알려주고 함께 체험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심판을 꿈꾸는 학생들이 갖춰야할 최우선 덕목을 묻자 "'인성'이라고 답했다. "누구나 경기장에서 실수할 수 있고, 규칙도 모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심판이 갖춰야 할 신의와 공정성, '인성'이다. 평소 바른 몸가짐, 마음가짐을 갖췄다면 심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수원=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