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황희찬의 클럽 레드불 잘츠부르크가 올시즌 유럽 무대에서 '짐승미'를 마구 발산하고 있다. 그들의 축구는 모기업 '레드불'의 로고 붉은 황소를 닮았다.
한 수 위의 실력을 지닌 빅클럽 앞이라고 '깨갱' 대는 법이 없다. 상대가 물면 같이 문다. 하품을 유발하는 0대0, 아니 그 비슷한 1~2골 경기도 나온 적이 없다. 시작부터 달랐다. 2019~2020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헹크(벨기에)를 6대2로 대파했다. 19세 특급 엘링 홀란드가 데뷔전에서 해트트릭을 폭발했다. '황소' 황희찬이 1골 2도움으로 홀란드의 활약을 뒷받침했다. 유럽 챔피언 리버풀(잉글랜드)과의 원정 2차전에서 0-3으로 끌려가다 3-3까지 따라잡았다. 이 경기에선 공격 트리오 황희찬, 미나미노, 홀란드가 연속골을 퍼부었다. 3대4 석패에도 '역대급' 화끈한 추격전을 펼치며 박수를 받았다. 24일(이하 한국시각) 홈에서 열린 나폴리(이탈리아)에서 전반 17분만에 드리스 메르텐스에게 선제실점하며 끌려갔다. 하지만 전반 40분 홀란드가 페널티로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후반 19분 메르텐스의 추가골이 터지고 8분 뒤 홀란드가 다시 동점골을 넣었다. 리버풀전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골을 넣은 나폴리가 승리를 가져갔으나, 잘츠부르크는 또 한 번의 이변을 만들 뻔했다.
이날 두 골을 추가한 잘츠부르크는 2019~2020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팀 득점 2위로 올라섰다. 바이에른 뮌헨(13골)의 뒤를 이어 11골을 퍼부었다. 홀란드는 6골로 득점 선두에 올랐고, 미나미노와 황희찬은 각각 도움 3개씩을 기록하며 도움 부문 공동 2위를 차지했다. 팀 실점(9골)은 최다실점 공동 3위다. 잘츠부르크의 지난 3경기에선 총 20골이 나왔다. 조별리그 참가 32개팀 중 가장 많다.(2위는 토트넘 홋스퍼 18골) 챔피언스리그에서 놀랍게도 경기당 평균 3.67골을 넣었고, 평균 3실점을 했다. 축구 경기를 볼 때 많은 골을 원하는 팬들에겐 무한한 기쁨을 안겼다. 선제실점을 하더라도 무기력하게 패할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잘츠부르크가 앞선 2경기에서 패한 건 끔찍하게 못해서라기보단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나서다.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과 카를로 안첼로티 나폴리 감독 모두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력을 지녔다.
반면, 잘츠부르크는 이름도 생소한 제시 마시 감독이 이끌고 있다. 미국 출신으로 챔피언스리그를 누비는 첫 감독이라는 타이틀로도 더 유명하다. 하지만 마시 감독은 강도 높은 전방 압박과 빠른 템포의 패스를 통한 공격축구로 빅클럽들을 어려움에 빠트리고 있다. 패색이 짙던 리버풀전 하프타임 때 팀 토크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은 장면을 통해 인기가 급상승했다. 그는 그 현장에서 잘츠부르크의 파울 횟수를 지적하며 더 적극적으로 플레이 할 것을 주문했다. 마시 감독은 나폴리전을 마치고 "우린 젊은 팀답게 용기있게 싸우고 있다. 지금 이 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선보이는 퍼포먼스에 대단히 만족한다"고 말했다. 23일 '프랑스풋볼'과의 인터뷰에선 "나는 두려움 없이 싸우는 선수,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를 원한다"고 말했다.
황희찬은 마시 축구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황소'라는 별명답게 저돌적이지만, 투박한 플레이를 펼치던 그는 마시 감독을 만나 플레이가 더 차분해지고, 전체적인 능력치가 상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황희찬은 리버풀전에선 현존 유럽 최고 수준의 센터백 버질 반 다이크를 뚫고 리버풀 골망을 갈랐다. 나폴리전에선 상대 수비수의 허를 찌르는 '넛멕' 드리블 돌파로 페널티를 얻어냈다. 잘츠부르크를 상대해본 안첼로티 감독은 "훌륭한 경기였다. 승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마시 감독은 "올 시즌 우리의 목표는 리그, 컵 그리고 챔피언스리그다. 원래 꿈은 크게 가져야 하는 것"이라며 "아직 산술적으로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 가능성이 남아있다"라고 희망을 언급했다. 승점 3점의 잘츠부르크는 나폴리(7점) 리버풀(6점)전에 이은 E조 3위에 위치했다. 4차전 나폴리 원정과 6차전 리버풀 홈경기를 모두 잡는다면 기적과도 같은 16강 진출이 가능하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